나를 위로하다 101 수국을 그려본다

푸른 수국을 그려본다

by eunring

수국을 그려본다

나무 이젤에 제멋대로 걸쳐져 있는

에코백들을 걷어내고 먼지를 닦으면

혼자만의 미술 시간

나만의 미술 공간이다

번거롭지만 수채화 도구들을

오랜만에 꺼내 펼쳐놓고 수국을 그린다

빗소리 들으며 수국을 그려본다


제주살이 할 때
한라산 구석구석에 피어있던

푸른빛 수국이 그립다고

에스더 친구가 말했다


안개 자욱한 산길을 달리다 보면

안갯속에 숨어 은은한 푸른빛을

고고하게 피워내던

산수국이 몹시도 그립다는

친구 에스더를 생각하며

푸른 수국을 그려본다


제주도의 푸른 밤..

그리고 푸른 수국..

그리움을 중얼거리는

에스더의 푸른 마음을 생각하며

푸른 수국을 그려본다


푸른 수국은

꽃말이 냉정하고 도도해서

수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친구의 말도 생각난다

아마도 푸른색이 가진

차가운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 친구의 집 앞에

가득 피어난 수국은 고운 분홍이었다


나에게도 푸른 수국에 관한

아픈 추억이 있다

두 해 전 누군가를 축하하려고

푸른 수국을 곱게 포장해

차가운 베란다에 두었는데

금방 시들어버려서 당혹스러웠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해 겨울 크게 아팠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오고

빗물 머금으며 수국이 피고

꽃잎마다 푸른빛으로 아롱지는

빗소리가 그리움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수국을 그린다

푸른 수국을 그린다

점점 푸르게 변할 수국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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