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281 비와 커피
사이폰 커피의 추억
비가 오니 커피가 그립다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뽀그르르 거품 예쁘게 피어오르는
사이폰 커피가 마시고 싶다
나도 코로나 블루에 젖어들었는지
밖에서 엠블런스 소리가 나면
가슴이 뛴다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기분 좋은 설렘이 아니라
불안한 떨림이다
줄줄이 날아드는 안전 안내 문자는
내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도 주지만
세상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안전하다는 느낌만큼 불안하기도 하다
불안하다는 것도 살아 있으니
느낄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하면
그까이꺼 괜찮다
그 무엇이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나에게 오리라고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비가 퍼붓다가도 어느 순간 멈추듯이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평온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까지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창이 넓은 카페에서
비 오는 창밖을 한가롭게 내다보며
사이폰 커피를 마시는
호사로운 생각이라도 해 본다
제법 멋쟁이던 고모를 따라다니며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어른들의 세상은
신기하면서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는데
아련한 기억 속 어딘가에 사이폰 커피도 있다
언젠가 빗방울 스치는 향기 그윽한 카페에서
사이폰 커피가 뽀그르르 만들어지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어린 내게 어른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던
별나라 여행 중인 고모를 잠깐 생각했다
사이폰 커피는 눈으로 마시는 커피고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영혼처럼 향기가 날아가버려
커피 향이 덜하다고 하는데
그 빈자리는 기억의 향기로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그때 잠깐 했었다
학생 시절 과학시간은 별로였는데
사이폰 커피 추출기구가
과학실험에 등장하던 플라스크를 닮고
추출 원리가 삼투압의 원리와 비슷해서
과학시간에 딴짓했던 걸
급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맑은 유리잔에 담기는 커피 한 잔에
기억도 반성도 저만치 사라져 버리고
향이 조금 부족한 만큼 깔끔한 커피 맛이
부드럽게 나를 달래주었다
커피는 원리를 따져가며
과학적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젖어 마시는 것이니
비 내리는 우리 집 창밖을 내다보며
사이폰 커피 한 잔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개운해진다
부드럽고 깔끔한 사이폰 커피 맛이
촉촉하게 내리는 비와 잘 어울린다
기억의 향기에 젖어 마시는
한 잔의 상상 커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