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302 태풍이 지나가고
꿈을 간직한 어른이라면
일본 영화나 드라마는
다시 또 봐도 좋다
영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아끼듯 기억해 두었다가
문득 생각날 때 추억처럼 꺼내본다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가 나더러
일본 문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하는데
칭찬인지 흉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 같다
반은 칭찬이고 반은 흉이라고
쿨하게 생각한다
어쨌거나 일본 영화 중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비 쏟아지고 바람도 불어대는 여름날
다시 꺼내 보기 좋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주인공 료타 역의 아베 히로시
엄마 요시코 역의 키키 키린
주인공의 누나 고바야시 사토미
모두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추억을 담은 영화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연립아파트가
감독 자신이 9살부터 20년 가까이
실제로 살았던 아파트라고 한다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의 단면들을
연립아파트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
하나하나 소중하게 들추어내듯이
섬세한 눈길로 챙겨 보여주면서도
따끔한 한마디를 툭툭 건네며
가족과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고
그러다가 다정하게 손 내밀어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원제는
' 바다보다 더 깊이'
료타의 엄마 요시코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이별 예감'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아들 료타에게 말한다
'노래 가사처럼 바다보다 더 깊이
하늘보다 더 푸르게 사랑해봤니?
보통은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하루하루를 단순하게'
태풍이 요란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부대끼며
바다보다 더 깊은 시간을 보낸다
태풍이 몰아치는 깊은 바닷속에서
그들이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사금파리 조각처럼 뾰족하게 아픈
가족과 인생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꿈이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꿈을 간직한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냐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는
아들 싱고에게 료타는 대답한다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마음에 꿈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거지"
엄마 요시코는 아들 료타에게
"행복이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요시코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베란다의 귤나무를 보며
요시코가 아들에게 건네는 말은
바다보다 더 깊고 하늘보다 더 푸른
온전한 사랑이다
"네가 심은 귤나무에는
꽃도 열매도 안 맺히지만
너라고 생각하며 날마다 물을 준단다
애벌레가 꼬물꼬물 이 잎을 먹고 자라더니
파란 무늬 나비가 됐어
어쨌든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는 거지"
가족의 사랑이란 깊고도 질기지만
'어른은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는
이혼한 아내 쿄코의 냉정함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태풍은 아니지만 바람도 소란스럽게 불어대는
창 밖을 내다보며 나에게 묻는다
나는 꿈을 간직한 어른인가?
나는 철이 든 어른인가?
이혼한 부모 아래서
빠르게 세상을 배워가는
료타의 아들 싱고의 말이 생각난다
'한 방의 큰 홈런보다는 볼넷이 더 좋다'는
싱고는 복권이 당첨되면 새 집을 지어
모두 모여 함께 살자고 했는데
그 복권이 당첨됐을까?
우리들 인생의 복권은
저마다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별 같은 꿈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의 복권 당첨 확률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복권 당첨 확률이 터무니없이 낮더라도
태풍이 소란스럽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여전히 꿈을 간직한 마음과 마음마다
잔잔한 평온이 마물렀으면 좋겠다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어른이들에게
괜찮다고 부족해도 상관없다고
다독여주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밝은 햇살 속에서
사람들 사이로 묵묵히 사라지는
료타의 어깨를 다독이며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말을 건네는
감독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