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297 발길이 멈추다

사진을 찍다

by eunring

잠시 비가 멎은 사이에

우산을 들고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저절로 발길이 멈추는 곳에

보랏빛 꽃들이 소리도 없이 웃고 있다

빗방울 후두둑 떨어지는데도

고개 숙이지 않는 꽃

보라보라 맥문동 꽃이 곱다


꽃은 여리여리한 모습인데

맥문동이라는 이름이 묵직하다

뿌리의 생김새에서 온 이름이라 하고

덩이뿌리가 약재로 쓰인다니

뿌리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다


흑진주 겸손 인내 기쁨이라는

꽃말도 마음에 드는 예쁜 꽃이다

나무 아래 잔디 대신 심어도 좋고

애써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며

겨울에도 푸른 잎이 그대로여서

보기에도 좋다


빗방울 머금고

하늘을 향해 발돋움하는 듯한

보랏빛 꽃이 마음을 끌어서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본다

꽃도 곱지만 건강해 보이는

진초록 이파리도 싱그럽다


보랏빛 맥문동 꽃 곁에서

수국이 비에 지쳐 시들어간다

그 곁에 서 있는 키다리 접시꽃은

늦둥이 꽃 하나를 매달고 바람에 하늘거린다


꽃들은 피어나고 시들어가면서도

순서를 다투지 않는다

하나가 시들면 또 하나가 피어나고

하나가 피어나기를 기다려

다른 하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저물어간다


꽃들이 소리도 없이

내 마음을 붙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지금 가장 예쁠 때

마음에 간직해 달라는

소리 없는 소곤거림 아닐까


눈으로 보고

마음에 간직하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꽃들의 청춘을

사진으로 찍는 순간

꽃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리도 없이 아름답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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