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335 회색 패션의 변명

무채색의 편안함

by eunring

나는 회색 마스크를 애용하는데

엄마는 내 회색 마스크를 안 좋아하신다

검정이나 회색이나 거기서 거기

엄마 눈에는 회색도 검정이나 매한가지다

검정 마스크 쓰지 말라고

자꾸 말씀하셔서 회색이라고 했더니

그게 그거라고 우기신다


마스크뿐 아니라

옷 색깔도 나는 회색이 편하다

하양은 금방 색이 변하고

검정도 얼룩이 바로 드러나서

부지런하지 않은 내게는

하양과 검정의 깔끔함이 조금 버겁고

어중간한 회색이 그나마 무난하고 편하다

집에서 입는 티셔츠나 바지는

회색을 애용한다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보라색 옷이나 마스크는 편하지 않다

좋아하는 것과 편한 것이 같지는 않고

편하다고 해서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며

마음에 드는 것과 무난한 것은 별개이므로


회색은 검정과 하양이 만난 색이라

두 색이 가진 심리를 복합적으로 가졌다

흰색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검은색에 비해 덜 묵직하다

신중하고 침착하지만 울적하기도 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소극적인

은둔의 색이기도 하다


회색 옷을 즐겨 입는 이유는

드러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띄기보다는 묻히기 좋아하고

나서기보다는 묻어가는 걸 좋아하므로

무난하고도 당연한 선택이다


회색 중에서도

멜란지 그레이를 좋아한다

멜란지(melange)는

프랑스어 멜랑쥬에서 온 말인데

섞이거나 혼합된 것을 뜻한다


멜란지 그레이 색상은

서로 다른 색의 혼합으로

서리가 내린 듯한 느낌이 난다

흰색과 회색이 섞인 배색으로

직물에 주로 쓰인다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커피음료 멜랑제가 카푸치노처럼

커피와 거품 우유를 반반 섞은 것이고

멜란지 실은 어두운 색 실과 밝은 색 실을 섞어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을 인데

부드럽고 고급스러우나 가격이 비싸다


차갑고 순수하고 깔끔한 하양이나

부지런한 멋쟁이들이 애용하는 검정보다는

여전히 어중간한 색을 선호하는데

밝고 화사한 색을 좋아하시는

엄마 눈에는 우중충해 보여

타박 덩어리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보아도

게으른 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고

편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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