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530 슬픔을 마주하다

비켜갈 수 없는 일상의 이별

by eunring

아침마다 엄마랑 함께 보는

어리디어린 배롱나무꽃입니다

하필이면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피어나

지나가는 바람에 시달리는 꽃이라서

바라볼 때마다 애잔합니다


분홍 소녀 배롱나무가

가녀리게 흔들릴 때마다

고운 손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어라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엄마는 이 어린 꽃나무가

당신 꽃나무라고 하십니다

꽃은 웃어도 소리 듣기 어렵다고 하시며

애틋한 눈길로 어루만지듯 바라보십니다


엄마는 소녀 꽃나무의 슬픔을

이미 손끝으로 느끼고 계신 거죠

어쩌면 당신의 고단한 소녀시절을

꽃나무를 통해 기억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이별을

어린 꽃나무에게서 봅니다

그 누구도 건너뛸 수 없는 이별이라고

작은 꽃나무가 소곤거려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꽃은 시들어

소리도 없이 이별을 고하겠죠


내년 봄 지나고 여름이 되어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겠지만

이 가을날의 꽃과는 같지 않은 꽃이죠

꽃이 웃어도 소리 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꽃 피어 열흘 가기 어렵고

웃는다고 다 행복은 아닌 거죠

어린 꽃나무가 소리도 없이 끌어안고 있는

잔잔한 슬픔과 마주하는

가을 아침이 유난히 쌀쌀합니다


가을이라서

가을이기 때문에

맥락 없는 하루하루가

습관처럼 이별하는 가을이므로

어린 꽃나무의 슬픔이 더 향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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