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593 가을날 읽는 셰익스피어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by eunring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바람 살랑이는 가을날 눈으로 읽는

셰익스피어라고 생각한다


영상의 아름다움보다도

감미로운 대사에 더 눈을 빼앗긴다

마음 대신 눈을 빼앗기는 건

안타깝게도 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막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막 읽는 건 능숙해서

자막을 보며 영상미에 젖어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이왕이면

영어에 능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 본다


사랑스러운 연인들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대사를 듣고 이해하며

그 느낌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심을 갖게 하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바이올라 역의 배우 기네스 펠트로의

곱상하고 귀여운 남장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게 되는 깨알 재미에 더하여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 조셉 파인즈의

깊은 눈에 빠져드는 설렘이 있다


건방진 글쟁이 녀석이라 불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슬픔 깊은 눈빛에

젖어들기에 좋은 가을날

눈부신 가을볕과 함께 하기 좋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감미롭고 아름다우나

한없이 애절하고 비통한 대사들을

자막이 아닌 귀로 듣고 싶어서

영어공부 제대로 안 한 걸

뜬금 후회하며 본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난 운명의 꼭두각시라오'

목마른 슬픔이 우리 피를 따라 마셨다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비장하고

'작별은 너무도 달콤한 슬픔이기에

내일까지 계속할래요'

바이올라의 대사는

슬프지만 사랑스럽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부잣집 딸 남장 소녀 바이올라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재미나고

두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이

비극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허구지만 제법 설득력 있다


서약의 미망인이 되어

웨식스에게 가겠다는 바이올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은 비극으로 바뀐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말에

덧붙여지는 대사까지도 처연하다


'종달새가 아니라 나이팅게일

죽음아 어서 오너라

줄리엣이 기다린단다'


여자는 연극무대에 설 수 없는 시대에

배우가 되고 싶어 남장을 바이올라는

로미오 역을 연습하다가 들통이 나고

셰익스피어와 사랑도 이루지 못한 채

웨식스와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교회로 향하는데

그녀를 태운 마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의 눈은 슬픈 사슴 같다


물때에 맞춰 버지니아로 떠나야 하는

마차에서 사라진 슬픈 신부

바이올라는 극장으로 향하고

막이 오르자 아름다운 베로나의

불운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신부복을 차려입은 그녀가

줄리엣 역의 남자 배우 토마스 대신

무대에 오른다


아름답고 우아한 줄리엣을 바라보는

로미오의 눈에 슬픔과 기쁨이

파도처럼 일렁이지만

무사히 연극을 끝낸 그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짧기만 한 작별의 순간에

셰익스피어가 말한다

'극장은 꿈을 파는 곳인데

우리 꿈의 끝을 보시오'


꿈을 파는 극장

꿈을 그려내는 셰익스피어

영화 속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셰익스피어의 꿈은 그의 작품 속에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영어로는 아니더라도

달콤 쌉싸래한 대사로 가득한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싶은

달달하고도 씁쓸한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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