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721 음악과 철학 사이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

by eunring

'대답 없는 너'라는 노래가 있죠

대답 없는 질문이라는 음악도 있어요

아무래도 음악과 철학은

해님과 달님처럼

사이좋은 오누이 사이인가 봐요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그린 영화

'조용한 열정'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흐르는 음악이 '대답 없는 질문'입니다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은

현악기들의 연주가 차분하고

여유롭고 부드럽게 흐르며

'대답 없는 질문'의

무심한 배경이 되어줍니다


잔잔히 그러나 깊숙하게 흐르는

강물소리 같은 현악 연주를 배경으로

트럼펫이 맥락 없이 여섯 번의 질문을 던지고

목관악기들은 트럼펫의 진지한 질문과 상관없이

수다쟁이들처럼 제멋대로 연주하면서

약속도 없이 불쑥불쑥 제각기 따로 노는데

트럼펫이 물색도 없이 일곱 번째

엄숙한 마지막 질문을 던지지만

여전히 대답 없는 너에게

대답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런 대답 없이

현악으로 무심하게 마무리하는

'대답 없는 질문'은

어디에서도 대답을 찾을 수 없는

허무하고 적막한 현실의 모습 같기도 해요


존재에 관한 끝없는 질문이라고 말한

아이브스는 '우주의 지형'이라는

부제도 붙였답니다


우주의 신비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약간의 유머를 곁들인 곡이라고 하는데

듣는 귀가 제대로 트이지 못해서인지

신비로운 우주의 소리도 모르겠고

별들의 반짝임도 들려오지 않지만

약간의 유머에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현악기들은 시종일관 무심하고

느닷없이 소란을 떠는 목관악기들 속에서

트럼펫은 저 혼자 인생의 숙제를 끌어안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각박한 현실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으니

삶은 물론이고 음악이든 철학이든

그 어떤 것도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찰스 아이브스는 미국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인데요

예일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보험회사를 설립해 보험회사 부사장이라는

재미난 이력을 가진 작곡가답게

음악도 실험적이고 독특합니다


생계형 음악가가 아니었으니

일하는 틈틈이 작곡을 했을 테고

음악계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자유롭게

맘껏 펼칠 수 있었을 테죠


나는 다만 '대답 없는 질문'이라는

철학적 제목에 끌렸을 뿐이지만

자꾸 듣다 보면 별들의 속삭임과

신비로운 우주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겠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소리들의

저마다 자유로운 어울림 속에도

우주의 질서가 신비롭게 머무르고

존재의 의미도 깃들어 있으리라 믿어요


'대답 없는 질문'을 배경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어봅니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그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찰스 아이브스의 음악이

고독한 오누이처럼 닮았습니다

사랑도 자기 그릇만큼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자기 그릇만큼밖에 담지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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