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6일
오늘은 퇴근을 하고 나뚜루에 앉아 드로잉 연습을 하고,
잠시 알라딘 중고 서점을 들렀어.
거기서 영혼을 만났어.
영혼이 내게 인사했어.
영혼과 악수하며 조금 울었어.
내가 영혼은 만난 건 심보선 시인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에서야.
“그렇다. 모든 것은 결국 영혼의 문제다. 아니 영혼의 문제여야 한다. (중략)
왜냐하면 영혼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때 영혼은 일상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지리멸렬과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 한다. 영혼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거나 계몽된 상태에 다다르게 하지 않는다. 영혼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영혼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순간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심보선,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영혼이라니.
영혼이라니.
영혼이 날 부른 거였구나.
모두 다 영혼의 문제구나.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돈을 벌어다가 돈이 되지도 않을 온갖 것을 배우는 데 다 써버리고는
집까지 걸어가는 이유가
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이 막막한 삶을 선택한 이유가
그런 삶에 허우적대면서도 불현듯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이유가
다 영혼 때문이었구나.
나에게 영혼이 있구나.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영혼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구나.
영혼이 부르면 아프게 응답하면서,
저항하고, 때론 속절없이 순응하면서,
울면서, 따라가며 살아야 하는구나.
어떤 사람은 말해.
영혼이 문제라고.
생산적이지 못한,
나약한,
생각이 많은,
예민한,
불편해하는,
남들과는 다른,
네 영혼이 문제라고.
영혼이 불러도 대답하지 말라고.
뜨거워진 영혼이 식을 때까지.
펄떡이던 영혼이 제 풀에 지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그런 말에 지친 내게 심보선 시인은 말해
영혼'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라고.
영혼은 기어이 당신을 부른다고.
“영혼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새로워진다”고.
그러니 시를 쓰고 싶다던 우리 아빠도,
춤을 추고 싶다던 우리 엄마도,
여행을 가고 싶다던 우리 오빠도,
언제나 망설이고 흔들리는 너도, 나도
모두 영혼의 문제야.
영혼이 자꾸 우리를 부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