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9일
오늘 드디어 토요일이야
나는 토요일이 너무 좋아
왜냐면 일요일엔 일을 쉬니까 다음날 늦잠을 잘 수 있거든.
게다가 오늘 연습이 빨리 끝나서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어.
그래서 오늘은 정말 정말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길에 불닭볶음면과 캔맥주를 샀어.
불닭볶음면을 끓이고 계란 반숙, 참기름, 치즈를 올리고
캔맥주와 함께 먹었어.
불닭볶음면을 한 입 먹고 맥주를 들이켜는데,
나도 모르게 ‘아, 태어나길 잘했다’라고 생각해버렸어.
불닭볶음면과 맥주가 있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잘했어.
나는 이런 시간을 사랑해.
한껏 마음을 늘어뜨려도 좋을,
다음날 아침 출근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까지 씻지 않은 몸에 대한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룸메와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낄낄 거릴 수 있는,
이런 일상의 쉼표들을 나는 정말 사랑해.
이런 순간을 정혜윤 PD는 ‘인생의 일요일’이라고 말했어.
“일요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상에 있는 것이 아주 힘들지는 않다. 그 시간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순간의 자족성이 있다. 충만함이 있다.
일요일 아침의 게으른 시간 속에서, ‘언제였더라! 그때 참 좋았었는데’하고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 근심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현실의 속박들도 잠시 사라진다. 졸음 속에서 여행을 한다. 미소와 즐거운 회상, 기쁨이 함께한다. 시들지 않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기억 속에 떠오른 날들을 인생의 일요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나는 이런 순간을 불닭볶음면과 맥주라고 부르고 싶어.
불닭볶음면과 맥주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매운맛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위장과
맥주를 살 수 있는 얼마의 돈,
다음 날 쓰린 속을 달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 등이 필요해.
그러니까 이 둘은 다음날 충분한 휴식이 보장될 때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인 거야.
나는 오늘 불닭볶음면과 맥주를 먹었고,
내일 늦잠을 잘 수 있는 일요일을 맞이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거야.
월화수목금토에서 일요일은 오지 않고
자꾸만 다시 월요일로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분들께도 어서 빨리 일요일이 왔으면 좋겠어.
쫓겨난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가라앉은 진실이 밝혀지고,
혐오와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일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나에게 불닭볶음면과 맥주가 있는 것처럼
그분들에게도 행복과 평화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나 불닭볶음면과 맥주와 일요일이 있어야 해.
나는 그게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권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