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1일
오늘은 초라한 날이야.
많이 울었어.
사실 다 나를 위한 눈물이었어.
자기 연민.
자기 연민에 빠져 엉엉 댔어.
돈이 너무 없어서,
뭐든 마음대로 되질 않아서,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몸이 너무 피곤해서,
힘이 없어서,
지쳐서 울었어.
나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서 울었어.
오늘 이런 나의 감정을 숨기고
너에게 미리 써둔 다른 내용에 대해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매일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던 이유는
매 순간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오늘의 나의 이 찌질함과 초라함도 기록해두기로 했어.
나는 오늘 우울했고, 무기력했어.
주기적으로 있는 일이야.
요 근래 너에게 편지를 쓰며 며칠간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으니,
아마 이제 내려갈 때가 되었던 거겠지.
발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연습을 하러 공연장에 갔어.
런 스루가 시작되고 소대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어.
그리고 커튼 사이로 무대 위에 서있는 너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야.
있지도 않은 태어난 이유를 붙잡고 있는 나에게
무대 위의 네가
자꾸만 살아갈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거야.
네가 무대 위에서 말을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걷고, 뛰고,
땀을 흘리는 거야.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문득 살고 싶어 지는 거야.
저렇게 눈부신 네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거야.
너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을까.
너는 어떻게 네가 됐을까.
알고 싶어 지는 거야.
너는 내게 말해.
같이 가자고.
꿈을 꾸자고.
살아 보자고.
지지 말자고.
그렇게 너를 보며 한참을 울고 나니
물에 흠뻑 젖은 걸레 같던 오늘의 내가 조금 가벼워졌어.
그렇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이제 태어난 이유보다
살아갈 이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어.
그래, 내가 왜 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
내가 왜 연기를 시작했지?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
나는 왜 노래를 하려고 하지?
내가 왜 새벽마다 출근을 하지?
아, 맞아. 살려고 그랬지.
더 잘 살아보려고.
지지 않으려고 그랬지.
너를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랬지.
그러니까 오늘 나의 눈물은
내가 졌다는 말이 아니라,
소설가 김연수의 에세이 제목처럼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하고 싶어.
지지 않으려고 조금 울었다고 생각할래.
내가 오늘 네게 쓴 편지는
우울감과 무기력과 자기연민에
지지 않겠다는 말이야.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