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언니에게

2020년 10월 16일

by 유은강

오늘 언니가 보내준 책과 사과잼 잘 받았어.

스콘과 사과잼을 먹으며 앉은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다 읽었어.

내게 꼭 필요한 책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책에서 작가가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쓴 대목을 보면서 언니 생각이 났어.

그리고 나도 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


나에게 물적, 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언니에 대해서.

언니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언니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언니를 생각하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언니에게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 졌어.


그런데 막상 쓰려고 보니 내가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더라.

언니의 기호나 취향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은데,

언니의 내밀한 마음.

언니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

언니가 매일 하는 질문과 고민들.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르더라고.

사랑하고 좋아한다면서 어쩜 이리 모를까.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미리 신청해두었던 강연에 갔어.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강연이었어.

강연이 끝나고 나는 강연자에게 물었어.

“관계는 노력이라고 하셨던 부분이 참 와 닿아요.

하지만 계속 노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아직도 관계가 많이 어려운데요.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답했어.

자신의 약함 때문인 것 같다고.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고.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필요한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관계를 보다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서로를 살리고, 돌보는 상호 돌봄의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런해진다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어.

나는 내 약함을 부정하는구나.

나는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관계를 힘들어하는구나.


언니, 나는 약해지는 것이 싫어.

약하게 보이는 것도 싫어.

그래서 나는 엄청 센 척해.

내가 내 모습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센 척인데,

또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해.

나는 복어야. 복어.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단단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때 나는 스스로 놀라.

내가 꽤나 연기를 잘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그 강연자 분의 말대로

약함이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가 모두 다 약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거라면.


나의 약함이 누군가를 상처 주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면.

약함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오히려 나는 약하지 않다며 혼자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일 거야.


언니, 그래도 나는 여전히 관계가 너무 어려워.

내가 실수하고 상처 줄까 봐 너무 무섭고,

또 내가 너무 약해질까 봐,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나약하고 못난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워.


그렇지만 내가 그럼에도 언니와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이유는

언니가 나를 살리는 사람이라서야.

언니는 나를 말하게 하고, 글 쓰게 하고, 움직이게 해.

언니가 지금의 나를 돌보고 도와주는 것처럼

나도 언니를 살리고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언니를 위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언니가 언제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사람으로 옆에 있고 싶어.

약함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나는 이 마음이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결국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나는 더 부지런해져야겠지?

내가 언니를 떠올렸을 때 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위해,

우리가 서로의 약함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할 거야.


언니, 약한 내 곁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나를 살리고 돌보는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매번 같은 마음으로 노력할 수는 없을 거야.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계속해서 변하고, 우리의 형편과 사정도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언니를 위해 힘껏 노력하고 싶어.

언니가 내게 소중한 만큼 부지런히 사랑하고 싶어.


그리고 앞으로 오늘 내가 했던 바보 같은 질문처럼

‘우리는 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지?’라는 물음이 떠오를 때마다 기억할 거야.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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