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방식

2020년 10월 14일

by 유은강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공연 <관람모드 - 만나는 방식>에서 세 분을 만났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여러분이 공연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계속 떠올랐어요.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왜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고 어떤 이는 왜 항상 더 많이 설명하고, 더 자주 설득해야 할까요.


자신을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들은 이렇게 말해요.

내가 누군 줄 알아?(나는 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네가 뭔데?(네가 누군지나 설명해라)


그리고 함부로 설득을 요구하죠.


너 페미니스트야?

여자야? 남자야?

너 어디 아파?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저는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음성 언어를 사용하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양손으로 타자를 칩니다.


세 분이 보여주고, 들려주신 ‘각자의 방식’을 통해 저는 제가 영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꽤 많은 무게가 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공연을 기획한 프로젝트 팀 이름, '0 set프로젝트’에 담긴 의미처럼

우리가 올라선 저울의 영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어요.


그리고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어요.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함께 산다는 것 아닐까요.


같이 걷는 이의 발걸음에 맞추는 일.

횡단보도 신호를 한 번 더 기다리는 일.

화면에 나타나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는 일.

화면에 완성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일.

상대의 손짓과 표정을 추측하는 일.

간단한 수어 동작을 따라 해 보는 일.


공연 말미에 세 분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태블릿 PC를 보며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그건 제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만남의 방식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분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우리 새로운 영점에서 또 만나요.

각자의 방식으로.



매거진의 이전글지각대장 유은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