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2일
오늘 아침에 또 지각을 했어.
죽고 싶었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어.
이번 달 벌써 세 번째야.
7시까지 출근인데 눈을 뜨니까 6시 55분이더라.
아, 망할.
여자는 왜 브라를 해야 하는 걸까.
브라만 없었어도 1분은 단축할 수 있었을 텐데.
약 900m를 8분 만에 뛰어갔어.
요즘 정말 왜 이럴까.
전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술 먹고 새벽 3시에 들어와도 6시 30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졌는데.
이제는 그게 안돼. 알람이 안 들려.
다이소 옆에 텐트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야.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니.
내가 이런 책임감 없는 인간이라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볼 거라고 생각하니까 더 죽고 싶어 졌어.
매일 늦잠 자고 지각하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너무 괴로웠어.
일하는 내내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어.
근데 어쩌겠어. 그렇다고 진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지각한 것도 너무 쪽팔리지만 지각한 거 쪽팔려서 죽는 건 더 쪽팔릴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걸 했어.
1시까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점장님께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혹시 또 늦잠 잘 상황을 대비해 킥고잉 앱을 미리 다운로드하고,
알람을 각기 다른 벨소리로 3분, 5분 단위로 열두 개를 맞췄어.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시발 비용을 지출했어.
<지각대장 존>은 그림책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린 계시 같아서 안 살 수 없었고,
<퀴어 별점>은 우울한 마음이 한방에 날아갈 만큼 깔깔 웃게 해 줘서 덥석 집어왔어.
그리고 삐삐가 그려진 수첩은…
오늘 같은 날은 역시 리셋 버튼 누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새 수첩이 필요하니까.
오늘 같은 실수가 없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미 저지른 실수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
나는 늦잠을 잤고, 지각을 했어.
그래. 이번엔 내가 잘 못 했지. 명백하게 실수했지.
근데 괜찮아. 세상 안 무너졌어. 나 안 죽었어.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지면 돼.
최대한 12시 전에 자고,
알람을 많이 맞추고,
전동 킥보드를 집 앞에 미리 대기시켜두고,
할 수 있는 걸 계속하면 돼.
집에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잔뜩 샀어.
반성의 의미로 내일 다이소에 가져가려고.
나의 분 단위 알람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룸메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해야겠다.
룸메야 미안해.
지각대장 유은강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참아줘요.
지각대장 유은강. 이제 괜찮아.
오늘 마음껏 우울하고 많이 자책했다.
이제 내일 빵 들고 가서 한번 더 사과하고
다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