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사랑

2020년 9월 24일

by 유은강

요 며칠 푹 쉬었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얼마 전엔 일하면서 처음으로 지각을 해서.

글쓰기를 제쳐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요즘 날씨가 정말 좋지?

산책을 많이 하고 있니?

하늘 사진도 많이 찍고?

우리가 이 가을은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런 바람과 이런 하늘이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가을이 있을지 몰라.

가을이 내년에 또 오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가을, 우리의 시간에 꼭 맞는 시집을 추천할게.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이라는 시집이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헌책방에서 산 1984년 판본인데,

지금도 서점에 가면 구입할 수 있으니

꼭 사서 읽어보길 바라.


지금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이 살아내고 있는 시간은 대체로 비슷해.

아주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가진 것 없고,

크게 이룬 것도 없는 막막한 시기지.

눈에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젊음이 부럽다고 하고,

그 나이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

꿈을 꾸는 것도,

꿈을 꿀 수 없는 것도,

꿈이라는 말 자체도,

때로는 얼마나 숨 막히는 것인지 다들 까먹은 걸까.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왜 안 떨어지지?)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27쪽)


원하는 게 100가지라면 그중 이뤄지는 건 하나라도 있을까 말까.

그래서 나는 종종 술, 담배에 의지해.

근데 그건 최승자 시인도 마찬가지인가 봐.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60쪽)


술, 담배 안 하고 이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은 경이로워.

다들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디나.

뭘로 버티나.

유튜브 보나.

넷플릭스 보나.

어떻게 다들 괜찮나.


버티는데 이골이 난 존버 청춘에 대한 최승자 시인의 정의.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내 청춘의 영원한, 48쪽)


트라이앵글에 갇힌 우리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우리는,

이렇게 노래하지.


어디까지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

나는밝은별이될 수있을것같고

별이바라보는지구의불빛이될수있을것같지만

어떻게하면푸른콩으로눈떠다시푸른숨을쉴수있을까

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20쪽)


처음엔 ’ 별’이었던 꿈은 점점 작아져 ‘지구의 불빛’이 되고,

결국에 꿈은 작은 ‘콩 한쪽’으로 바뀌어.

나도 언젠가 별과 불빛을 선망하는 고질적인 꿈에서 벗어나

콩깍지 터뜨리고 나오는

자유로운 푸른 콩 한 알이 되어 볼 수 있을까.

그래, 별이 아니면 어때, 불빛이 못되면 어때.

‘푸른’ 숨 내쉬는 ‘푸른’ 콩이며 어때.

썩지만 않으면 돼.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 공부, 28쪽)


나도 정말 이렇게 살고 싶다.

완전히 다르게 사랑하면서.

여기저기 다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용감하게 부정하고

계속 아무것도 모르면서 창피당하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목청껏 울고

동네가 떠나가라 웃으면서

살고 싶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는 가야지

울며 절뚝 불며 절뚝

이 거리 한 세상을 저어 가나니

가야지,

그리고 나의 사랑을 떨어야지.

(부질없는 물음,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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