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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샘 Nov 28. 2023

옷 좀 물려준다고 큰소리 치지 마.

뒤늦은 감사를 전합니다.

  "언니, 윤호(가명) 옷 매번 챙겨줘서 고마워요!! 아이가 오늘 당장 입고 나갔어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가을옷도 자주 입었거든요. 감솨합니다~♡♡♡"


  얼마 전 후배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새 옷을 선물한 것도 아니건만 하트를 세 개나 받다니 민망하다. "별말씀을~ 갑자기 추워져서 바로 입을 수 있겠다. 편히 입어줘서 고마워^^"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심이었다. 요즘은 집집마다 자녀가 많아야 두셋. 금지옥엽 귀하게 키우기 마련이다. 옷을 물려주는 게 오히려 실례는 아닐까 매번 조심스럽다. 이쁘고 깨끗한 옷으로만 고르고 골라 세탁까지 마쳐 보내는 이유이다. 몇 번 입지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도 몇 벌 있다. 그 집 옷장에 짐이 되지 않도록 딱 한 철 정도 앞서 보내려면 그때까지는 우리집 드레스룸 한 구석에 잘 보관해야 한다. 주고도 욕먹을까 싶어 내 깐에는 이것저것 신경을 쓰게 되지만 그 자체로 즐겁다.




  11월 말 기온이 벌써 영하권을 넘나든다. 뭐가 그리 급한지 겨울이 허겁지겁 달려드는 게 영 못마땅하다. 옷장 정리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다달이 옷을 사고 또 사도 뭔가 부족하게 만들고, 넘쳐나는 옷가지 정리에 철철이 힘을 빼게 하는 원흉이다. 반팔 티셔츠부터 롱패딩까지 온통 뒤섞여 터질 것 같은 옷장을 한동안 째려보기만 했다. 암만 그래봐야 별 수 없다. 몇 시간에 걸쳐 철 지난 옷과 겨우내 입을 옷을 구분해 제자리에 넣었다. 더는 안 입을 옷을 한 무더기 내다 버리는 일까지 마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하다.


  옷장 정리를 하는 김에 우리 아이들에게 작아진 옷을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낼 준비도 같이 했다. 쪼그리고 앉아 옷 상태를 한 벌씩 살펴보면서 어느 옷을 누구네로 보낼지 사이즈별로 나누는 일련의 과정이 갑자기 귀찮아졌다. 헌옷수거함에 넣어버리면 편할 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뭐 하러 공들이고 있나 싶다. '당근'에 내다 팔면 얼마나 받을지도 궁금해졌다. 괜찮은 옷들이니 이걸로 아이들 간식값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아들 딸 겨울옷 산다고 목돈이 나간 걸 생각하니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이르자 잡념은 거미줄처럼 넓게 펼쳐져 갔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지난 초여름에는 남편 후배네로 전집과 그림책 수십 권을 보낸 적이 있다. 중고서점에 발품 팔아가며 한 권씩 사 모았던 그림책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던가. 우리의 손때 묻은 책들은 그 집에서도 사랑받고 있을까? 뭔가 바라고 준 건 아니었지만 일언반구 감사인사도 전하지 않는 그가 문득 괘씸해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불과 일주일 전에도 18인치 유아용 두 발 자전거를 직장 동료 아들에게 물려준다고 가져갔다. 설마 그 사람은 아니겠지. 옷장 정리를 마친 직후의 후련한 기분은 그새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실로 나오니 진한 민트색 피아노가 내 시선을 붙잡는다. 절로 얼굴이 벌게진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거나 독특하다며 꼭 한 마디씩 해주는, 오래된 피아노. 십여 년 전 큰아이 시우(가명)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아버지의 지인 분께서 조심스럽게 피아노가 필요하면 보내주겠다는 말을 전하셨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지만 염치없이 냉큼 받아 여태 쓰고 있는 것이다. 전 주인의 깔끔한 성정을 보여주듯 흠집 하나 없이 우리집으로 와주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후에도 그분은 오해 없이 받아달라면서 아이 옷가지를 몇 번 더 가져다주시곤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댁에서 물려준 옷 중에는 명품도 꽤 섞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의 큰손주가 입고 쓰던 옷가지며 피아노였다. 짐작컨대 며느리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며 시우에게 물려줄 옷을 받아 오셨을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값비싼 옷이며 피아노를 낯 모르는 아이에게 물려주기란 쉽지 않았을 터. 물론 피아노와 옷가지를 받고서 입 씻고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우를 옷 걱정 없이 키우면서 내내 감사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까지 샅샅이 헤아리지는 못했었다. 해보지 않아서 몰랐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가비(가명) 옷만 해도 그렇다. 재작년 형부가 유럽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온 가족이 떠나기 전까지 언니는 두 살 터울의 조카 서윤이(가명)가 입던 옷을 늘 물려주곤 했었다. 덕분에 어린 딸아이를 인형 삼아 매일 아침 옷을 골라 입히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그뿐인가. 계절이 바뀌어도 옷은 언제나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언니에게는 그 흔한 스타벅스 쿠폰 한 장 없이 고맙다는 말로 때우곤 했다. 나에게 주는 사람 따로 내가 주는 사람 따로 있을 뿐이지, 이제껏 누군가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더 많았던 셈이다. 자고로 받은 건 기억하고 준 건 잊으라고 했는데 그 반대가 되었다. 이를 어쩌나. 옹졸한 속내를 누가 알까 무섭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면 앞으로는 좀 더 착한 척하며 사는 수밖에.


  그나저나 언니가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우리 딸도 비싼 옷 좀 다시 입어보게.

 



*제목 배경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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