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신비로운 풀 대나무 이야기
대나무는 생김새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높은 활용성 때문에 사람들과 매우 친숙한 식물이다. 그런데 이 식물이 풀인지 나무인지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면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인 윤선도 조차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하였을까?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그렇다면 대나무는 풀인가 나무인가? 풀과 나무를 구분하는 기준은 첫째, 단단한 목질 부분이 있는가? 둘째, 부피 생장을 하는가?로 구분한다. 그런데 대나무는 두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만 충족을 하니 풀이라고 보는 것이 바른 것이다. 즉, 대나무는 부피 생장을 하지 않으니 처음 태어난 그 크기로 위로는 자라지만 옆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나무는 옆으로 부피 성장을 하는 흔적인 나이테가 없고, 속이 텅 비어 있어 나무가 아닌 가장 높게 자라는 풀로 보는 것이 바른 것이다. 그런데도 이름에 ‘나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풀이 아닌 나무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대나무가 만일 말을 할 수 있다면 “이제부터 ‘대풀’이라 불러주세요.”라고 항변할 것 같다. 이제 대나무가 정확히 나무인지 풀인지 알았으니 대나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나무는 굵기와 생김새 및 자생지에 따라 수십 종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대나무의 종류는 굵고 긴 왕대, 가늘고 짧은 솜대(맹종죽), 화살의 재료로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이대, 쌀과 돌을 일어 구분할 때 쓰는 조리를 만드는 조릿대, 잘라서 파리 낚싯대로 사용하던 신우대 등이 있고 각각의 용도가 달리 쓰인다.
대나무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사진으로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실물로 대나무 꽃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나무는 꽃을 거의 피우지 않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나무는 한번 성장하기 시작하면 매년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를 통해 중간에 죽순을 내고 죽순이 성장하여 대나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다가 어느 날 새로운 후손을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꽃을 피우는데 그 주기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왕죽의 경우 60년에서 100년의 주기에 한 번씩 꽃을 피우기 때문에 대나무 꽃을 실물로 구경하는 일은 평생 한 번도 못 봤다고 할 정도로 희소한 일이다.
이와 같이 대나무 꽃은 너무 오랜 주기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예전부터 대나무 꽃에 대한 전설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뉘어 내려왔다. 학어집(學語集)[1]에 따르면 ‘봉황은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아니한다’며 성인이 나타날 때 봉황도 같이 나타나고, 봉황이 나타날 때에 즈음하여 대나무가 미리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준다는 의미로 매우 성스럽게 생각하였다. 한편, 대나무는 60년 주기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한꺼번에 죽기 때문에 대나무가 꽃을 피우면 나라에도 흉사가 생긴다고 했다 한다. 그러므로 대나무를 기르는 농가에선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을 열매를 맺고 후손을 만들기 위한 현상이 아니라 ‘개화병’이라 하여 대나무가 모두 죽는 질병으로 오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대나무라는 식물을 주기적으로 꽃을 피우는 식물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꽃을 피우는 식물이고, 그 개화의 주기가 매우 긴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꽃이 피면 대나무가 죽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질병이 아니라 생애를 마치는 것이라고 노는 것이 맞다. 대나무는 죽기 전에 한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후손을 키우고 자기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나무는 약 60년~100년 주기로 한 번에 대나무 숲 전체가 꽃을 피워 씨앗을 엄청나게 떨어뜨린 후 죽어 완전히 세대를 물갈이한다. 죽은 대나무들은 썩어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되는 선순환을 하는 신비로운 식물이다.
대나무는 주로 땅속뿌리에서 죽순을 내어 서식지를 늘려가는데, 이 죽순은 유명한 요리 재료다. 죽순은 그 자체로는 별로 맛은 없지만 식감이 아삭아삭하다. 죽순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자라 하루에 100cm 이상 자라는 경우도 있어 채취시기를 잘 잡아야 한다. 빨리 자라는 것은 새벽에 순이 자라면 해 질 녘에는 이미 무럭무럭 자라서 못 먹을 정도로 빨리 자란다.
죽순은 강하지 않지만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는데 아미노산의 일종인 티로신 때문에 성질이 차고 약간 단맛이 난다. 죽순은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며, 단백질을 많이 포함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죽순은 칼륨이 많아 몸의 과도한 염분을 소변과 함께 배출주기 때문에 고혈압 예방에도 효능이 있다. 그렇지만, 죽순은 위궤양, 소화기출혈, 신기능부전, 비뇨기 결석이 있는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있고, 어린이들은 씹는 기능이 약해 소화시키기가 어렵고 칼슘과 아연의 흡수를 방해하므로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죽순이 봄에 싹이 나고 자라나며, 죽순이 매우 빨리 자라는 것과 연관된 고사성어로 '우후죽순'(雨後竹筍)이 있는데, 비 온 뒤 죽순이 빠른 속도로 돋아나 자라나는 것에 비유하여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마구 출현하는 것을 마치 죽순이 자라는 것 같다고 비유한 말이다. 죽순은 뿌리를 통하여 땅 속에서 돋아나는 것이고 성장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옆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때로는 남의 밭 농작물 속에서 돋아나 피해를 주기도 한다.
대나무는 '신이 내린 선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활용도가 매우 크다. 대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반드시 대나무를 자원으로 쓰는 물건이 발달된 문화와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대나무는 건축자재, 식기, 장신구, 무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담양지역이 죽세공으로 유명하다. 대나무를 잘라 식기나 물병으로도 쓸 수 있고, 땔감과 무기로도 사용되었으며, 뗏목이나 건물 뼈대 등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상생활용품으로 조릿대나 광주리, 키, 빗자루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또한 핸드백과 가방 등 패션 상품으로도 사용되었으니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용도를 자랑하는 것이 대나무이다. 그러나 점차 현대 문물이 대나무 제품을 대체하면서 일상 용품들로 사용되는 용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에는 일상용품 대신 건강용품이나 먹거리로 대나무가 사용되는데 대나무 통 속에 밥과 기타 곡물 등을 넣어 찐 대통밥(옆 사진)이라든지, 한약재의 원료로 사용되는 경우, 대나무를 이용하여 빚은 죽통주(竹筒酒) 또는 대나무 통에 소금을 넣고 9번 구워서 만드는 죽염 등이 그것이다. 또한 대나무를 이용한 휴양지 조성으로 울산 태화강(아래 사진)이나 담양 등은 시민들의 관광명소 및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이 매우 뛰어난 식물로 일반 나무의 4배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공기를 정화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어 휴양지나 관광명소로 사용되는데 제격이다.
대나무는 뿌리부터 잎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유용한 식물이다. 대나무 뿌리는 추억의 대나무 뿌리 회초리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사용되는데 실제로 대나무는 2차 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과 베트남전에서 미국 고엽제 살포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싹을 틔운 식물로 생명력과 약효가 매우 뛰어난 식물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 뿌리는 냉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열이 많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도록 하거나 튼튼하게 하는데 효험이 있고, 몸의 열을 다스려 몸 밖으로 빼내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또한 대나무 잎은 탁월한 약용 효과가 있어 차로 애용되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대나무 잎은 뇌졸중과 심신안정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의학에서도 여라가 지 효능이 입증되어 약재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대나무 잎은 당뇨 억제 및 예방에 탁월한 효능이 있고, 혈압강하와 혈중 콜레스테롤 증산 개선 및 동맥경화 예방은 물론 항산화 작용과 노화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1] 학어집 : 조선 고종 때 박재철이 한문 초학자를 위해 엮은 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