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2. 가을에 대하여
박병태의 가을시 3選
가을비 2
恩山 박병태
서쪽부터 잿빛 물들인 하늘에
바람 따라 바쁜 구름이
비명을 지르며 비 꽃을 피워냈다
예쁜 추억과 함께
반가운 친구처럼
환한 이를 드러내며 창문을 두드린다
찻잔 마주 들고 엷은 미소로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와 인사를 건넨다
보고 싶었다네
오늘은...
좀 머물다 가게나
젖은 옷 때문에 창가에 만 머물던
친구와의 추억담이
국화꽃 밑으로 노래하며 흐른다.
낙엽에 대하여
恩山 박병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인지
흔들림에 바람이 오는 것인지
남보다 먼저 희생하여 낙엽이 되는 것인지
생을 다하여 낙엽이 되는 것인지
계절이 변하여 낙엽이 되는 것인지
낙엽이 지니까 계절이 오는 것인지
너는
수많은 의혹을 품고 가볍게 흔들린다.
힘이 들기도 하겠다마는
그침 없는 흔들림에도
마지막 힘을 다해 예쁘게 화장을 한다.
한번 더 스치는 바람에
최대한 소리 없이 곡선 비행을 한다
착지 후에도
치장한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모자란 부분은 땅으로 붙여
아름다움을 유지하니
너는 항상 예쁘기만 하구나.
또 한 번 몰아치는 바람에
예쁜이들이 이리저리 군무를 춘다.
너는
심술 맞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살풀이로
끝까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너의 아름다운 최후는
눈서리 올 때까지 흐트러짐 없을지로다.
오늘 네가 유난히 예뻐 보인다.
- 어느 가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캠퍼스에 앉아 -
국화와 창(窓)
恩山 박병태
세상을 향해
매년 하나씩은 생겼을 법한 그대의 문이
오십여 년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문은 겹겹이 봉해 놓고
어떤 문은 꼼꼼히 비끌어 매고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바라보는 세상은
허허로운 웃음을 가식처럼 피어나게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지을 때
문득 빼꼼히 연 작은 창문 아래
하얀 달빛에 빛나는 조그만 국화꽃 하나
우악스레 크지도 않고
흐드러지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다소곳한 예쁜 꽃봉오리 위에
하얗게 머금은 미소가 아름답다
은은한 향기 품으며
한 발짝 다가선 예쁜 가을 국화 한 그루
조심스레 맞잡은 두 손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윽한 향기에 취해
정갈한 자태에 끌려
활짝 열어젖힌 창문을 통해
은은한 국화 향이 가슴을 덮친다
온방 가득히 그대의 향기가 번진다
하나둘씩 닫힌 문이 열린다
닫힌 마음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