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46. 사색의 계절

어느 가을날과 추운 이별 그리고 기다림을 노래한 詩 3편

by 박병태


사색(思索)의 계절

恩山 박 병 태


사색(思索)의 계절의 어디쯤에서

코스모스처럼 거닐고 싶을 때면

가을 한 모퉁이가 되어 보세요.


낙엽에 새긴 추억을 찾아

시간에 묻은 그리움 찾아

그대여

지금 그 자리를 벗어나 보세요.


잘 익어 고개 숙인 볏 이삭들에게

산다는 것

이렇게 세월이 가고 있다는 것이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라고

혼자라도 그렇게 말해 보세요.


꽃길 따라 살금살금 걸어보세요

콧노래도 나지막이 불러보세요




이별 그리고 기다림

恩山 박 병태

차가운 바람 날리며

그대와 함께 떠난 버스는

오늘도 무심하게 되돌아온다


수백 번을 떠나고

수백 번 다시 오지만

빈 차로 되돌아오는

차가운 버스 정류장


얼마나 더 있어야

그리움이 사라질까

얼마나 더 무심한 왕래를 봐야

눈물이 멈출 수 있을까


기다림에 지쳐

뒤돌아 걷는 이 반복이

얼마나 더 있어야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게

홀로 설 수 있을까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 젖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기나 긴 겨울의 기다림


마음이 마음을 만져 웃음 짓게 하는

눈길이 눈길을 만져 화사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인연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차가운 바람 넘어

푸른 싹이 다시 돋고

차가운 바람이

따뜻한 아지랑이로 변했다지만

정류장의 기다림은 그칠 줄 몰랐다


오늘도 저 멀리

마지막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탈 출

恩山 박 병 태


그대여 한번 벗어나 보세요


변심(變心)하고 있는 계절의

길목 어디쯤에서

모든 잎을 다 떨구어

소리도 못 내고 슬퍼하는

마을 어귀 덩치만 커다란

느티나무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혼자서도 충분한

늦가을 한 모퉁이가 되어 보세요.


눈 감아도 잘 보이는

그리움을 따라서

덮어 두어도 생각나는 추억을 찾아서

지금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과 함께

그대여 지금 벗어나 보세요.


인생의 반을 살았다는 것이……


예전에 보이지 않던

개미들의 이사행렬에

가던 길 멈추고

장애물 가지를 치워줄 배려도 알고


끼룩~하며 지나가는

철새 한 무리가

서산마루 까마득히 멀어질 때까지

바라봐 주는 여유도 알며


탕탕거리는 소음과

기름 연기 품어내는

늙은 농부의 경운기 소리가

정겨운 줄도 아는 너그러움이

묻어나는 시간 속으로


그대여 일상을 벗어나 보세요.


돌아오는 길에는

양지바른 한쪽에 가는 청춘 아쉬워

녹색 풀잎에 연연하는 철없는 들풀에게


산다는 것,

이렇게 세월이 가는 것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 위해

내가 보내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 보세요.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어제 걸었던 그 길이

같은 길일지라도

오늘 걸을 때는 새롭게 시작하며


그대여,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그대여 한번 벗어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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