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2025년 제82회 베니스영화제가 9월 6일 성대한 막을 내렸다.
황금사자상의 영예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평단의 극찬을 나란히 받았던, 프랑스의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게 돌아갔다.
특유의 선글라스와 펑키한 스타일로 무대에 오른 짐 자무쉬 감독은 “오 마이 갓”이라는 첫 마디와 함께, “영화인들은 경쟁을 동기로 삼지는 않지만, 이 영예를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용한 이 영화를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2주간 펼쳐진 이번 영화제는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수상이 불발되며 국내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만큼 예측 불가능한 이변과 화제성으로 가득했다.
2025년 제82회 베니스영화제의 영광의 수상작들은 다음과 같다.
황금사자상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짐 자무쉬 감독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미국 북동부, 더블린, 파리 등 세 도시를 배경으로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가족과 얽힌 관계를 그린 3부 옴니버스 드라마다.
케이트 블란쳇, 빅키 크리엡스, 애덤 드라이버, 샬롯 램플링 등 화려한 캐스팅과 함께, 대사보다 침묵과 시선, 미묘한 감정을 담아낸 관찰적 연출이 특징이며, 유머와 멜랑콜리를 균형 있게 결합한 미니멀리즘 코미디 드라마 장르로 평가된다.
베니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가볍지만 사려 깊은 성찰을 안긴 영화” 또는 “편안한 명상 같은 영화”로 호평하며, 가족과 기억, 정체성을 담담하면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 방식으로 그려냈다고 평했다.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
<힌드 라잡의 목소리>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
이스라엘 가자 지구 전쟁과 난민의 현실을 그린 영화 <힌드 라잡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서 피란길에 올랐던 6살 소녀 ‘힌드 라잡’이 가족과 함께 차량에 갇혀 구조 요청을 한 긴박한 상황과 실제 통화 녹취, 구조대의 증언이 생생히 담긴 작품이다.
한 소녀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관객에게 절박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다큐드라마적 성격의 영화로, 가족을 모두 포격으로 잃은 6살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알린 작품이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이 작품으로 23분간의 기립박수라는 유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은사자상 감독상
<더 스매싱 머신>
베니 사프디 감독
<더 스매싱 머신>은 형제인 조슈아 사프디와의 공동작업에서 벗어나 베니 사프디 감독이 처음으로 단독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MMA 선수 ‘마크 커’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이다.
영화는 전성기보다 약물 중독, 사랑, 인간적 고뇌 등 ‘마크 커’가 겪었던 심리적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
다큐멘터리적 연출과 실제 격투기 선수들의 참여로 현실감을 더했으며, 드웨인 존슨의 연기 변신 또한 큰 호평을 받았다.
심사위원 특별상
<구름 아래>
잔프랑코 로시 감독
잔프랑코 로시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구름 아래>는, 이탈리아 일상을 탐구하는 그의 3부작 영화를 완성한 최종작이다. 영화는 나폴리를 흑백 영상으로 담아내며, 화산의 흔적을 배경으로 도시의 일상과 역사, 불안이 공존하는 모습을 시적인 감성으로 그려냈다.
잔프랑코 로시는 이 작품을 3년에 걸쳐 촬영을 완성했고, 고정 카메라와 무해설, 흑백 미장센을 활용해 인물과 풍경, 역사와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자연스럽게 녹여내 큰 호평을 받았다.
골든 오셀라상(각본상)
<어 파이드 디 우브러>
발레리 돈젤리 감독
<어 파이드 디 우브러>는 발레리 돈젤리 감독이 연출하고, 길레스 마샹과 공동 각본을 맡은 2025년 프랑스 드라마 영화이다. 프랑크 쿠르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돈젤리가 이를 각색했다.
성공한 사진작가가 작가의 꿈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현실적인 생계와 이상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그린 이 작품은 “사회 구조 속 예술가의 고군분투를 진솔하게 조명한 자전적 색채의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볼피컵 남우주연상
<라 그라찌아>
토니 세르빌로 배우
2025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라 그라찌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법학자인 이탈리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안락사 합법화 법안에 서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토니 세르빌로는 1987년 연기 경력을 시작해 2001년 <엑스트라 맨>으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사랑의 결과>(2004), <일 디보>(2008), <그레이트 뷰티>(2013) 등 그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으며 마침내 2025년 <라 그라찌아>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과의 오랜 연기 여정의 결실을 맺었다.
볼피컵 여우주연상
<우리 머리 위의 햇살>
신 즈레이
차이샹준 감독의 영화 <우리 머리 위의 햇살>은 수년 전 사고로 헤어진 연인이 7년 만에 재회하며, 과거의 비밀과 희생, 죄책감, 서로를 향한 구원과 속죄를 그린 작품이다. 평단은 이 작품을 “희생과 죄책감이 캐릭터에 무겁게 작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했다.
이 작품에서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인 신 즈레이는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것은 중국 여성 배우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1992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공리는 <귀주 이야기>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작품을 연출한 장이머우 감독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신인배우상)
<사일런트 프렌드>
루나 배들러
<사일런트 프렌드>는 헝가리 출신 감독 일디코 엔예디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독일·프랑스·헝가리 합작 드라마로, ‘고요한 농가 200여 년에 다다른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1908년, 1972년, 2020년 등 세 시기를 아우르는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양조위가 뇌과학자 역으로, 루나 배들러가 1972년 이야기를 담당하는 인물로 출연하며, 그녀는 이 작품으로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신인 배우상)을 수상했다.
평단은 이 작품을 “은은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라 평하며, 인간이 따라야 할 시간의 속도를 배우고 다른 세상과의 관계, 존재에 관한 사색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주목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수상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어쩔수가없다>는 평단의 높은 평가에도 수상이 불발되어, 국내 팬들에게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이번 베니스영화제는 ‘괴물’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고전적 괴물부터 현실적 ‘무언의 괴물’까지 폭넓게 다뤘으며, 넷플릭스 작품의 경쟁부문 진입으로 관객 접근성을 높이는 진취적 시도 또한 눈에 띄었다.
올해 베니스는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작품이 경쟁작에 올라 풍성한 화제를 선사한 자리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베니스영화제 공식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