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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지금 당신에겐 분명 그 선택이 정당하다. 진리를 찾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소박한 축복을 길 위의 동료 순례자들에게도 퍼뜨려주길.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세속적인 생활에 헌신하건 영성에 몰두하건, 깨어 있건 자고 있건, 이 여행은 계속된다. 순례자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395쪽)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별들의 루트 La ruta de las estrellas'라고도 일컫는다. 은하수가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을 가로지르듯이 땅에 있는 하늘의 길이라는 뜻이다. 이 길은 중세 때부터 야고보의 무덤을 향해 걸어간 수많은 순례자의 행로를 연결한 것이다.
물론 수많은 역사적인 흔적들이 아스팔트 아래 묻히거나, 밭을 개간하면서 사라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늑대나 다른 산짐승들이 살던 숲이 자동차들과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길이 되거나, 공장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중세에는 순례자들이 동냥을 했지만 요즈음은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는 사이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까미노 정신의 핵심은 나바라의 숲 안갯속에, 리오하 지방 언덕의 능선마다, 그리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까스띠야 레온 지방의 지평선에, 혹은 갈리시아의 습한 그늘 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산띠아고로 가는 길은 거의 800Km에 달하며 각자 자신의 배낭과 소지품을 직접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한 부분을 걷는 이 작은 모험을 시도하려는 이들이 아직은 많이 않다. 어떤 이는 걷는 즐거움으로 시작하고, 어떤 이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시작한다. 또는 예술 혹은 역사적인 관심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관통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이들도 있고, 때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시작한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처음 이 길을 떠날 때는 자기 내면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11~12쪽)
순례길의 도시나 마을들에는 박물관을 잘 만들어놓은 곳들이 많이 있다. 나헤라도 그런 도시 중 하나이다. 사실 순례를 하다 보면, 막상 박물관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 운영시간에 맞추어 가는 것도 쉽지 않고, 하루종일 걷다 보면 피곤함에 숙소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런 보물들을 찾아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었다. 이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박물관들을 둘러보니 진귀한 유적이나 예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순례를 계획할 때, 가능한 대로 일정을 조절하여 대성당이나 박물관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박물관의 유물들을 통하여 우리는 시간의 벽을 넘어 산티아고를 순례했던 수많은 선배 순례자들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87쪽)
인생의 모범 답안은 없다. 그러나 삶의 순리적 흐름, 나이에 맞는 모범 답안을 적잖이 요구받고 살고 있었다. 얼마나 진정한 때를 부정하고 살아낸 것일까? 학업, 친구, 결혼, 직책을 갖고 돈을 갖고 부모가 되고 훗날 황혼의 그늘에 앉아 삶을 돌아본다면 스스로에게 얼마나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삶을 자신의 이야기로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때론 관계 속에 그것이 쉽지 않다.
무한 경쟁을 위해 세상에 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쉼 없이 부추기는 세상의 속도에 취해 인생을 관찰하지 못하며, 점점 자신을 믿는 것보다 세상을 믿는 것이 더 쉬웠고 목발처럼 의지하게 되었다. 때로 어리석게도 세상의 기준치에 벗어나 자기 비난의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박수받는 일등이 되지 못해도 우린 스스로 별이었다. 최선을 다해 가치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면 삶은 후회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주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즐기면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이란 손 닿는 데 있는 꽃들로 제 나름의 꽃다발을 만드는 솜씨인 것이니까... (155~156쪽)
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여행이 그저 여행에 불과해서 잊어버릴 수 있다고, 혹은 상자 속에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편리한 착각이다. 나는 카미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 전체를 들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핵심은 빠져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278쪽)
문득 그리워
아무것도 못하는
정지된 시간은
헛헛함에
밥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물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멍하니 물만 넘치고
파란불 깜박여도
건널 생각 못한 채
덩그러니 서 있는
아무것도 못하는
정지된 시간에
그리움만 멈추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