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혼자이고 싶어서

결국 혼자일 수 없는

by 은섬


너무 지쳐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그들의 온갖 민원을 접수받는 직업 특성상 퇴근길은 언제나 진이 빠져 녹초가 된다. 기본적으로 불편함과 화를 장착한 이들을 미소로 대해야 하는 나는 간혹 미소 짓는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기도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던가? 침 뱉는다. 응대의 미소에 왜 웃어? 내가 우스워?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응대하고 집에 돌아오면 벙어리가 된다. 정말이지 말 한마디 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패잔병이 되어 집에 들어오면 엄마와의 2차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패배하고 돌아온 터라 방어할 의지조차 없이 쏟아지는 원망과 비난의 말들에 그저 난타당할 뿐이다. "내가 왜 저걸 낳아서 평생 이렇게 사나, 저걸 괜히 낳았지. 내 팔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러게... 낳아 달라 한 적 없는 나를 낳아 우리 엄만 팔자가 이리되었네..." 날마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버티는 것뿐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야고보의 길. 언젠가 한 번 걸어야지 했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길 중 내가 걷고자 선택한 길은 프랑스 길이다. 이유는 그 길이 서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걷는다. 서쪽으로 걷는다는 것은 해를 등지고 나의 그림자를 끝없이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걷는 길. 나는 나의 그늘이 늘 두려워 회피했다. 그림자는 내 모습이 비친 자취이지만 빛에 따라 말도 안 되게 커지기도, 또 작아지기도 하는 허상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나를 끌어안고 싶다. 용기를 내 나의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야고보.

나는 예전부터 야고보가 자꾸만 마음 쓰였다. 예수가 열두 제자 중 가장 사랑했다는 요한, 그 요한의 친 형인 야고보. 자신보다 더 빛나고 사랑받는 동생을 둔 형. 똑같이 스승을 사랑하고 따랐지만 스승의 눈길은 늘 동생에게 머물렀을 거라는 한계. 나는 형제가 없어 어떤 마음일지 알 수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항상 야고보란 인물이 애잔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는 조금 다른 결이다. 베드로는 형이니까 안드레아는 천국의 열쇠를 받은 형을 질투보다 자랑스러워했을지 모른다.


야고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애상과 순례길이라는 정서가 더해져 산티아고 길은 내게 인상 깊게 남았지만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으로 한 달 이상의 일정을 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길은 퇴사 후 또는 은퇴 후 60대가 되어야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하나씩 준비를 했다. 떠나고 싶지만 당장 실현시킬 수가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낭, 등산화, 침낭 등 순례길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하나씩 마련했다. 가이드 북을 반복해서 읽고 지도를 외울 정도로 들여다보았다. 당장 그 길을 걸을 수 없지만 꿈을 꾸었고, 준비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직장생활 근속 10주년 뜻밖의 40일간 휴가가 주어졌다.례가 없던 갑작스러운 회사 결정이었는데 나는 이미 예전에 산티아고로 떠날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서 항공권만 예약하면 될 일이었다. 출발시기는 겨울을 택했다. 사람들에게 지쳐있던 터라 다만 며칠이라도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순례자가 가장 적은 2월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루르드로 향한다. 치유의 루르드, 내가 루르드에 도착한 날은 마침 세계 병자의 날이다. 나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딸이 아니라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우리 가족은 달라졌을까?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인형놀이를 같이 해주었지만 야구공과 글러브로 캐치볼을 하고 싶어 하셨다. 내가 딸이라 아버지 대는 여기서 끊어졌다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내가 딸로 태어났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건 어렸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루르드에서의 하룻밤은 속절없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새벽녘 루르드에서 미사를 드리고 바욘행 기차를 탔다. 바욘에서 생장행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겨울이라 생장까지 가는 기차가 버스로 대체되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드디어 생장이다.


다들 배낭을 짊어진 것이 나와 같은 순례자다. 크게 숨을 들이키며 심호흡을 하는데 한 친구가 인사를 건넨다. 키가 엄청 커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다렌은 독일에 살고 있는 영국인이다.

"안녕? 너도 순례자구나! 나도 순례자야. 이번이 두 번째 순례야. 넌 어디서 왔니?"

"난 한국에서 왔어. 첫 순례야. 순례자 사무실이 어딘지 알아?"

"응. 내가 길을 알아. 같이 가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렌을 따라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순례자 사무실 분위기는 따듯하고 포근했다. 첫 순례길의 낯섦이 따스한 온기에 녹아내린다.


순례자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다렌이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계획한 게 없다고 하자 같이 마켓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들어와서 저녁을 해 먹자고 한다. 전자레인지로 본인이 파스타를 만들겠노라고. Thanks, Darren. 막상 마켓에 가니 뭘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다렌은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 포스를 뿜뿜 내뿜으며 내 장바구니에 물, 에너지바, 말린 과일. 견과류를 담아준다. 숙소로 돌아와 그가 만든 파스타를 먹었다. 그가 내일부터는 힘들 테니 배불리 먹어야 한다고 음식을 자꾸 권한다. 식사를 끝내고는 내게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을 거라고도 했다.


드디어 다음 날, 꼭두새벽부터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움에 눈을 떴다. 다렌이 아침인사를 건넨다. "잘 잤어? 근데 비가 많이 와!"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거세서 누구 하나 출발할 생각을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아침을 먹고 비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조용히 우비를 꺼내 입고 그 위에 판초까지 이중으로 몸을 덮었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내 표정이 너무 비장했는지 릴랙스 하라며 다렌이 나를 보고 웃는다.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아. 출발할래? 괜찮겠어?" 그가 걱정되는지 나의 상태를 살폈다. "응, 괜찮아. 가자!" 다렌이 없었다면 거센 비바람에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며 걷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그는 큰 키로 성큼성큼 걷다가도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다봤다. 그러던 중 잡풀이 크게 자라 있는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길 표식이 풀에 가려져 못 본 듯하다. 저 뒤에서 다른 순례자가 걸어오고 있다. 그녀도 나처럼 길을 잘못 들었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네트와의 첫 만남이다. 이 첫 만남으로 그녀와 28일을 함께했다. 그녀는 독일인으로 나와 동갑이고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이렇게 길 위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으며 걸었다. 그 길 위에선 누구나 천사다. 특히나 겨울엔 더더욱 그렇다.



따로 또 같이 걷는 길_메세타 평원


폰세바돈에서 만하린까지 우리를 에스코트 해준 강아지



혼자이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결국 단 하루도 혼자가 아니었던 까미노. 우리 모두의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다다라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마쳤다. 미사 내내 옆에 있던 크레이그가 내게 소감을 묻는다. 그는 미국인이고 목회자다. 스페인 친구 아르투로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산티아고 길을 순례했는데 그들과는 곤사르의 바에서 아침식사 때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대성당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이 길을 혼자 걷고 싶었는데,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그룹 투어가 되었어! 하하하." 크레이그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다. 그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게 말했다. "신께서 네가 혼자인 것을 바라지 않으신 거야. 너는 몰랐겠지만 이 길 위에서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였고, 신께서는 네게 그걸 주신 거야."


나는 군대에 대해서는 1도 모르지만 길 위에서 만난 그들과 어떤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 그 길을 걸어 본 순례자라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SNS라는 것도 처음 발을 들였다. 1년에 한두 번 그저 생존신고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후로 나는 그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방문하기도 하며, 함께 여행도 다닌다. 함께라는 기쁨과 설렘을 나에게 알려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래. 신께서는 내가 혼자인 것을 바라지 않으셨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




걸음의 속도와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산티아고 길은 각자의 페이스로 걸어야만 완주할 수 있다. 이 길을 함께 걷는다는 의미는 주야장천 옆에 딱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순례자들은 각자의 속도로 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쉼터에서, 바에서, 알베르게(숙소)에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한다.


까미노의 인연으로 아르투로는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몇 년 후 내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다렌은 두 아이의 어엿한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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