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만의 효도관광

우뚝 서 있는 붉은 금강송, 그리운 금강산

by 은섬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민간인이 북한을 여행하는 역사적인 시작. 하지만 1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08년 중단되기까지 200만 명에 가까운 남측 관광객이 방북했고, 나는 엄마와 2007년 연말을 금강산에서 보냈다.


미니버스를 타고 조별 그룹으로 이동하는데 모두 노인들 뿐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고 함께 온 것이 아니라 90% 이상이 효도관광이라며 노부모만 보낸 것이다. 지팡이를 짚어도 거동이 용이하지 못하고, 보청기를 껴도 잘 들리지 않고, 뭘 보려 해도 눈도 침침한 노인들이 단신으로 오셨다. 인솔 가이드가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케어하기엔 역부족이다. 우리 버스에 젊은이는 나 하나 아니 엄마와 나 둘이다. 엄마가 젊은 축에 들었다.


식사는 시설 내 식당가나 외부 북측 식당에서 사 먹는다. 공통된 일정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선택이며, 셔틀버스를 타고 자유롭게(물론 지정된 공간 안에서)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다.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취향껏 선택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이 좋지만 어르신들은 프로그램을 선택해 가격을 지불하고, 버스 노선을 찾아 각 선택지로 이동하는 것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나도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온 것이고, 어르신들께 마음 쓰는 것이 오지랖인 것 같아서 가이드가 알아서 하겠지 모른 척했다. 엄마와 여기저기 다니다가 잠시 쉬러 숙소로 돌아왔는데, 로비에 어르신들이 다 모여계신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식사는 하셨고요?" 지나가는 인사로 여쭤봤는데 어쩐지 대답이 우물쭈물이다. 어르신들 모두 지금까지 그냥 로비에 계셨던 것이다.


가이드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선택프로그램은 추가 비용이 드는 것이어서 본인이 권유할 수 없다고... 순간 '영업하라는 게 아니고, 어르신들을 좀 챙기라고요!'라고 말할 뻔했다. 북이라는 특수성 안에서 경직되어있는 가이드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냥 어르신들의 처지가 답답해 화가 좀 났을 뿐이다. 부모님이 일정 내내 버스 안에서만, 호텔 로비에서만 있었다는 걸 자식들은 알까?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걸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이 맞다.


몸이 불편해 호텔에 있는 게 편하다는 몇 분은 그냥 계시도록 하고 나머지 분들은 최대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게 설명드렸다. 결국 어르신들은 엄마와 나의 일정에 무조건 함께 동행하겠다고 하신다. 온천도 하고, 금강산도 올라가고, 옥류관 냉면도 먹고, 공연도 보고 즐길거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다. 금강산 등반은 4시간 코스다. 무릎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그 추운 날 또 그냥 금강산 입구에 가만히 계셔야만 했다. 이제는 가이드가 뭐라 말만 하면 어르신들이 다 나만 쳐다보신다. 나에겐 엄청난 부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판 무덤. 이런 상황을 가이드가 머쓱해해도 이것도 뭐 어쩔 수 없다. 가이드가 판 무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르신들께 '잘해 드리자' 했다.


그날 저녁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추운 날씨에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밖에 있거나 버스 안에만 계셔서 여기저기 쑤신다고 말씀들을 하셨다. 가이드에게 1시간만 온천을 다녀올 수 없겠냐고 부탁을 해봤다. 모 아니면 도니까. 웬일로 가이드가 이곳저곳 연락해보더니 2시간을 특별히 배려해준다. 왕복 1시간, 온천욕 1시간 조건이다. 가이드가 가이드다운 가이드를 한 것이 처음이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좋아라 하시는 모습이 흐뭇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가이드에게 복귀 신고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어르신들과 두 번째 이벤트를 했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바가 있어서 모시고 갔다. 무알콜 칵테일을 시켜드리고 사진도 찍어드리고 야경도 내려다보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자 호텔 외부의 모든 불빛이 다 꺼진다. 가로등도 꺼졌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북의 고육책이다. 소등과 함께 우리도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어르신들이 오늘 밤은 푹 잘 것 같다고 하시니 기쁘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미니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분위기가 좀 딱딱하다. 군사지역이나 민간인 지역처럼 민감한 곳을 통과할 때면 차량 커튼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동하는 모든 길 위에는 일정 구간마다 북한군 초소가 있다. 어르신들은 북한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을 많이 불편해하셨다.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를 감시하는 나쁜 놈들!"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셨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르신. 많이 불편하세요? 저들은 어르신 말씀처럼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만약에 우리 버스가 사고가 나거나 고장 나거나 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서 도와줄 사람들이기도 해요. 그러니 너무 불편해하지 마세요."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는 "음... 그렇군... 그럴 수도 있겠어." 동의해 주시니 감사하다.(내가 왜 감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금강산은 아름다웠다. 각양각색 암석들과 붉은 금강송. 금강송의 쭉 뻗은 자태는 정말 위풍당당하다. 하늘빛 머금은 계곡물은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이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금강송과 일만이천봉


유일하게 우리에게 공개하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버스로 지나가는데 해질녘이었고, 집집마다 저녁밥을 짓기 위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과 짚으로 짠 덕석을 덮은 송아지를 끌고 가는 아이의 모습이 마치 박수근 화백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풍경이 떠오른다.


선제타격이란 말이 한반도에서 얼마나 무책임하고, 얼마나 무서운 의미인지... 그 말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전략적 공격을 하냐 마냐, 앉은자리에서 그냥 죽냐 마냐가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 초점이 의지가 어디를 향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돌아가신 분도 안타깝고, 이렇게 된 상황도 안타깝다. 한걸음 나아가면 두 걸음 물러서게 되는 상황이 늘 반복된다. 며칠 해금강호텔 해체 정황이 위성사진으로 포착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자꾸만 멀어져 간다. 세월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생각과 염원도 옅어지고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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