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프란세스(프랑스길)를 따라 묵시아와 땅끝이라 부르는 피스테라(피니스테레)까지 900km에 달하는 길을 걷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실패라는 의미다.
이천 년 전 야고보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는 스승 예수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지금의 스페인으로 선교를 떠났다. 그는 바다 건너 이방인들의 땅에서 열정적으로 전교했지만 이교도들의 마음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0년간 목숨 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작 몇 명에게 세례를 준 것이 전부다. 자신의 결과에 크게 실망한 야고보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처형되었다. 야고보는 실패자일까? 실패처럼 보였던 그의 노력은 천년 후 순례길이 되었고 다시 천년의 시간이 흘러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가톨릭 3대 성지가 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해마다 전 세계의 수십만 명이 이 길을 걷는다. 야고보는 실패한것이 아니었다.
마침표 없이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없다. 마침표는 끝을 나타내지만,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되고, 그래야만 문장의 확장이 될 쉼표도 찍을 수 있다. 28일간 12kg의 배낭을 메고 때론 산을 넘고, 때론 하루 30km가 넘는 길을 걸어 마침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문득 공허했다. 올림픽에서금메달의 영광을 안은 선수들의마음이 이와 같을까? 영광을 위한 달음질은 공허함을남긴다. 그렇다고 길을 떠나기 전 딱히 무엇을 기대하거나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 길 위에서 번뇌에서 해탈하거나, 내 인생의 벼락같은 터닝포인트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완주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30대 중반 한순간 사고로 발가락부터 발등까지 관절과 뼈가 여러 조각이 나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2년 동안 휠체어와 목발 신세였다. 재활의 시간도 길어서 한참을 걷지 못했다. 지금은 회복되어 평소 큰 불편함은 없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어김없이 수술 한 다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있어 내가 잘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던 터였다. 처음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에는 하루 20Km 도 벅찼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일정 내 완주는 불가능하다. 정해진 일정 안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갈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점프(순례길 중간 구간을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는 것)를 할 것인지 팜플로나에서 에스떼야로 가는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밤마다 다쳤던 다리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 5분 이상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걸을 땐 경련이 없다가 가만히 누워있으면 떨림이 시작되는데 직접적인 통증도 통증이지만 그보다 떨림으로 인한 수면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 근육 경련은 전혀 예상치 못했고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증상이다. 비가 자주 오는 스페인의 겨울 날씨도 좋지 않은 다리 상태에 한몫했다.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을까? 불수의적 떨림과 전쟁을 치르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사흘 중 하루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잠을 잔다기보다 이틀 꼬박 잠을 못 자고 사흘째는 피로를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듯이 쓰러지는 루틴이 생긴 것이다. 기절이었건 잠이었건 사흘마다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자 하루 20Km도 벅차던 체력에 점점 힘이 붙어 나중엔 30Km도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엔 33일~34일 예정했던 일정을 점프 없이 28일 만에 완주했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까미노 친구들은 완주기념 파티를 열었다. 체코 사람인 토마스는 세리머니로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피리를 불며 구시가지를 행진했고, 우리는 그의 뒤를 춤추며 뒤따랐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춤을 추는 그 순간에도 내 가슴은 텅 빈 것만 같다. 내 마음에 나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했다. 모두들 기쁜데, 왜 나만 기쁘지 않은 걸까?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친구들에게 땅끝 피스테라 0.0Km까지 나의 순례 길을 계속 가겠노라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조용히 내 마음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하다. 마태오는 진심으로 나를 만류했다. "너는 이미 한계를 경험했고 그걸 넘어섰어. 더 이상은 무리야." 마태오는 길 위에서 늘 그랬듯 리더의 모습으로 나를 다독였다. 아네트도 마태오의 말을 거들었다. "네 몸을 봐. 지금 네 상태가 더 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원한다면 버스 타고 피스테라에 함께 가자. 제로 Km에서 다 같이 또 파티를 하는 거야."
늦은 밤까지 이어진 파티 후유증으로 모두들 곯아떨어졌다. 그들은 이미 레이스를 마친 선수들이니 더 이상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다. 이른 새벽 동트기 전 나는 홀로 일어나 조용히 배낭을 챙겼다. 여기서 멈추어도 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있다. 이 공허함이 무엇인지 나는 내 마음을 알아야만 한다.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성한 곳 하나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 발에 다시 힘을 싣는다.
어느새 아네트가 일어나 있다. 그녀는 내가 떠나려는 것을 알고 대성당까지 배웅했다. 피스테레길은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녀와 골목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나를 꼭 안아줬다. 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녀를 두 팔 가득 안았다. 가슴으로 따듯함이 전해졌다. 그녀와 함께 한 28일간의 낮과 밤이 떠올랐다. "Anett, Danke sehr. Danke..."
친구들을 뒤로하고 묵시아를 거쳐 피스테라까지 나흘 꼬박 120km를 걸었다. 아네트의 제안처럼 버스를 타고 소풍처럼 떠나도 좋았을 그 길을 고집스레 굳이 걸은 이유는, 나에게 그 나흘간의 시간이 은퇴식을 치르는 메달리스트의 마지막갈라쇼와도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피스테라 0.0Km 표지석까지 당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기나 긴 순례길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피스테라 0.0Km 표지석
피스테라에서 말없이 석양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평화란 단어가 각국의 언어로 쓰여 있다. 해를 삼킨 대서양을 향해 조그만 소리로 평화라고 말해본다. 노을마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주위가 고요하다.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잘했어, 수고했다." 이제까지의 삶이 실패였다 하더라도 이제 마침표를 찍었으니 나는 이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너는 끝났어."라고 다른 이에 의해 찍힌 마침표가 아닌 나 스스로가 찍은 마침표다. 나의 새로운 시작에는 문장의 확장이 될 쉼표도 틈틈이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실패는 내 삶 안에서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두려움 없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침표를 찍었으니 문장은 언제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묵시아를 거처 피스테라까지의 여정은 간절한 바람대로 온전히 혼자 걷기 위한 길이었다. 첫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있는 네그레이라에 도착했다. 정말 그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는데 코끝이 찡하다. 혼자이기를 바랐건만 막상 혼자가 되어 길을 걸으니 친구들이 그립다. 샤워기 물소리 틈으로 환청처럼 누가 나를 부른다. 잘못 들었나 싶어 귀 기울이니 한국인 여자가 도착하지 않았냐고 오피스탈레로(알베르게 관리자)에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I'm here!" 물 뚝뚝 흘리며 황급히 나가보니 마크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마크!!!!" 내가 젖어있지만 않았어도 반가운 마음에 그를 안아줬을 거다.
그가 저녁식사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나를 위해 특별히 페페론치노도 넣었노라고(딱 한 개 넣었으면서) 어서 먹어보라고 한다. 언제 준비했는지 와인까지 있다. 와인을 반쯤 비웠을 때 그가 진지하게 묻는다. "왜 친구들을 두고 혼자 길을 떠났어? 마태오도, 아네트도, 호세도 다른 친구들 모두 너를 걱정했어." 그가 너무 진지해서 나는 오히려 진지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길이 끝나지 않아서... 마크 넌 왜 이 길을 걷는 거야?"
"음... 나도 그냥 길이 끝나지 않아서..."
페페론치노를 넣었지만 하나도 맵지 않은 파스타처럼 싱거운 대답. 우리는 웃었고,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혼자이고 싶었던 내 바람은 이번에도 또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묵시아와 피스테레까지 마크와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참으로 기쁘고 충만한 실패다.
마태오는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처음 만났고, 그는 우리 무리의 리더 역할을 했다. 겨울이라 문을 연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많지 않아 그는 우리를위해 묵을 곳을 알아보고 정보공유를 했다. 저녁이면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 자국 내 경제사정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소상공 자영업자들은 6개월 번 돈으로 1년을 살고, 고용된 이들(대부분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은 관광시즌 3개월 번 돈으로 1년을 산다고 한다. 이는 비단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각 나라의 친구들 모두 비슷한 걱정을 했다.
호세는 스페인 친구인데 폰페라다(Ponferrada)에서 처음 만나나와 설거지 짝꿍이 되었다. 알베르게에서나의 한국식 설거지를 보고 쌍따봉을 날리더니 그 이후로 호세는 내가 설거지만 했다 하면 옆에 와 동참했다. 내가 그들의 설거지를 보고 기겁을 했던 것처럼, 그들도 나의 설거지가 신기한가 보다. 그는 내 다리 상태를 많이 걱정했는데 간호사인 그의 누나와 영상통화까지 해가며 내 다리에 대해 조언을 구했더랬다. 호세가 나를 만나면 꼭 전해주라고 했다며 마크가 근육 크림을 건넨다. Gracias, Jose! 그는 세계여행이 꿈이며, 꼭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코로나로 그의 꿈은 잠시 유보되었지만, 언젠가 그가 한국에서 직접 한국식 설거지를 할 날이 꼭 올 거라 생각한다.
마크는 영국인으로 산티아고 여정의 끝무렵인 곤사르(Gonzar)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새를 연구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귀 기울이다가 망원경으로 한참 새를 관찰하기도 하고, 도감과 비교하며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도 해 주었다. 영국의 오래된 구옥에 사는 박쥐를 이소 시키는 일을 부업으로 하는 그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밴드 음악을 듣는것을 좋아하고미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다. 순례 후 그는 영국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어여쁜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