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Korea?

으이구! 아니다. 그래도 한 형제다.

by 은섬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Korea라 대답하면 유럽에서 유독 많이 묻는다. "남한? 북한?"


이미지 pixabay


나에게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동일 민족이면서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나뉜 '분단국가'라는 것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어디서 왔냐? 는 질문에 Korea라 대답을 하면 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국이란 나라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으니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굳이 구별하고자 하는 질문이 없었다. '해외여행 자유화'란 말이 낯선 분들이 많을 것이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치르며 1989년 해외여행 전면적 자율화가 시행되었는데, 그 전 까지는 일반국민이 개인여행을 목적으로 출국할 수 없었다.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 해외에 나갈 수 있고, 특히 K-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관계로 Korea라 대답을 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묻는 것이다.


사실 이 질문은 '한국을 알고 있다. 너희의 상황을 내가 알고 있어.'라는 그들의 관심의 표현쯤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의 분단 상황이 이데올로기의 개념적 상황이 아니라 실향민과 이산가족, 탈북민에게는 피가 마르고 뼈에 사무치는 실체적 아픔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제임스 아저씨가 있다. 그는 퇴역한 미군인데 한국에서 복무한 적은 없지만 알고 지내는 한국인이 몇 있다며 친근하게 대해주신다. 그는 미국이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흘린 피와 희생을 자랑스러워했다. 나 또한 미군의 희생을 귀하게 생각한다. 제임스 아저씨의 말처럼 현재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롯이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 자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희생에 대해 제임스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생각은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을 포함한 러시아, 중국,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통일을 원할까? 그에게 반문했다. 아저씨는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마침 아네트의 생일파티가 조촐하게 열려 그 저녁 아저씨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아저씨는 한국의 문제를 미국의 관점에서 생각했다는 것에 'sorry'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의 생각이 미국인으로 당연한 것이니 'never mind'로 응답했다. 그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본인과 순례길을 함께하자 제안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걷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굳이 동행하지 않더라도 순례길에서 자연스럽게 그를 만나게 될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날 이후 아저씨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다른 순례자들도 제임스 아저씨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홀로 길을 떠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Buen Camino, James.' 순례길 내내 그가 마음 쓰였다.


오래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비행기 옆좌석 승객이 일본인 아저씨였는데 내가 일본인인 줄 알고 말을 건넨다.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하자 본인 장모님 고향이 북한이라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는 자국 내 조총련과 남북관계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은 한반도의 남북이라 하면 대치상황만을 떠올린다. 전쟁, 대립만이 우리를 설명할 유일한 단어일까? 나는 제발 다른 말을 하고 싶다. 가능성이 제로라 할지라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에도 나는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한반도가 비록 지금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한 핏줄 한 형제라고 아저씨께 말했다. 그도 다른 외국인들처럼 나의 말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형제라는 생각은 못했노라고 그가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나의 인내심이 십분 발휘되었다. (파리는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다. 파리를 여행할 분들은 이 글로 선입견이 없으시기를...) 파리 곳곳에서 남한이냐 북한이냐는 질문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North Korea?"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유명 관광지의 능글맞은 가게 주인들은 North Korea?라는 떡밥을 던지고 '아니라고 펄쩍 뛰는 우리의 리액션'을 기대한다.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능글능글 웃음을 머금고 투척하는 "North Korea?"에 편협한 나의 콤플렉스는 주책없이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마구 울리며 작동한다. 마음의 소리를 뒤로 하고 나도 그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Oh! Um... Maybe... Guess it! Choose!" 대충 이 정도 선에서 타협한다. 조금의 여력이 남아있는 경우 "Shall I tell you a secret? South and North Korea are brothers. We have the same grandpa. Same bloodline." 미소와 윙크로 마무리한다.


헤드폰을 끼고 들리지 않는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고요 속의 외침' 게임같이 답답한 이 모든 상황이 그들에게는 그저 위트 있는 유머, 해학과 풍자일 뿐이다. (영국 결혼식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피로연 내내 끊임없이 유머를 날리고 웃는 그들을 보고 이들은 유머를 인생의 최우선에 두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었다. 그들의 유머가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과시적인 몸짓과 웃음처럼 보였지만, 그들에게 유머는 일상의 여유와 재치다.)


"North Korea?"

"으이구! 아니다! 그래도 한 형제, 한 민족이다!" (어쨌든 얼굴엔 미소와 윙크!)




왜인지 모르겠지만 개선문의 웅장함 앞에서 문득 광장과 밀실, 남과 북 그 어떤 것도 택하지 못하고 제3의 중립국으로 향하던 '명준'이 떠올랐다.(최인훈 소설 '광장') 그는 진정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른 바다로 투신할 수밖에 없었을까? 침묵의 바다처럼 육중한 비늘을 뒤채면서 숨 쉬기에는 견뎌야 할 삶이 너무 무거웠던 걸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제3국을 선택한 순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었던 건 아닐? 기품 있고 아름다운 파리에서 어찌하여 나는 도시의 정취에 녹아들지 못하고 명준의 뒷모습을 떠올리는가? 왜 나의 조국은 끝내 분단인가? 정치 경제 사회 이념 국민정서 국제관계 다 알겠는데, 그래도 헤어진 가족은 형제는 핏줄은 만나야 하지 않은가?


그날 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생트 샤펠(Sainte Chapelle)의 첨탑 끝에 걸려있는 위태로운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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