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외경과 구전으로 전승되었고, 또 많은 미술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그중에서 조토의 작품은 독보적이다. 조토는 막 해산을 하고 침대 위에 앉아 아기를 건네받는 안나의 모습과 침대 아래에서 시종이 아기를 씻기는 모습, 출산 선물을 들고 온 이웃의 방문을 맞이하는 세 장면을 한 벽화에 모두 담았다.
아기를 안나에게 건네는 이들은 입고 있는 옷의 장식으로 보아 시종은 아니고 아마도 안나의 친척이나 가족의 일원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안나였으니 그녀의 출산에 일가친척들의 관심이 지대했을 것이다. 아기가 놀라거나 불안해할까 봐 속싸개로 꽁꽁 싼 모습이 정겹다. 신생아가 엄마 뱃속처럼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려고 한동안은 이렇게 싸개로 매는데 아기를 받아 안으려고 한껏 쭉 뻗은 안나의 손이 감격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보여 준다.
침대 아래에는 시종이 커다란 대야를 놓고 아기 얼굴을 씻기고, 그 옆에서는 고운 천을 둘둘 말며 정리를 하고 있다. 목을 잘 가누지 못하는 아기의 머리를 감싸 안고 씻기는데 그 손길이 아기는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잔뜩 찌푸린 표정이 금방이라도 '우애앵~'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그 모습이 귀여운지 옆에서 천을 말고 있는 이의 입가에 미소가 잔잔하다.
문 밖에는 출산 소식을 전해 들은 이웃 여인이 출산한 집에 필요할 만한 것을 챙겨 와선물로 건네고 있다. 우리도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치고 이웃의 출입을 조심하는 풍습이 있는 것처럼 외부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선물만 전하는 모습이다.
2. Presentazione di Maria al tempio 성전에서 마리아를 봉헌함
어느덧 아기는 자라 어린이가 되었다. 당시는 자녀가 일정 나이가 되면 성전에 맡겼는데,성전이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요아킴과 안나는 마리아를 데리고 성전으로 향하는 길에 시종을 시켜 바구니를 짊어지게 했다. 천으로 덮은 바구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이는 아이를 성전에 맡기면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기 위함일 것이다. 안나가 조심스레 대사제 앞에 마리아를 세우고, 마리아는 두 손을 가슴 위로 포갰다.이러한 몸짓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는 겸손과 순종의 의미이다. 겸손과 순종은 구속이나 복종과는 달리 자유 의지에 따른것이므로 마리아의 당당한 표정과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가 어엿하다. 대사제와 교사들은 따듯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맞이하고 요아킴은 계단 아래에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조토 회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바구니를 짊어지고 안나를 뒤따라 계단을 오르는 시종과 그림 오른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이다. 조토 이전의 회화에서는 등장인물의 뒷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모두 정면을 바라보거나 옆모습이지만 조토는 과감히 관람자를 등지고 뒤돌아 있는 이들을 배치해 그림 속에 공간을 만들었다. 중세의 평면적인 그림에 비로소 공간적인 부피가 생긴 것이다.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