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길에서, 가게에서, 식당,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공원, 산, 바다, 스포츠시설, 대중교통 그 모든 곳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선진국은 장애 인구가 적은 나라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이들이 불편함 없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나라다. 여행 중 독일과 대만이 인상 깊었는데 여러 나라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장애인을 볼 수 있었고, 대만은 사소한 곳까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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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인종 위생학(우생학)을 앞세워 장애인과 유전병, 각종 질환자들을 부적격자로 분류하고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해친다며 'T4 프로그램'이란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과거사가 있다. 지금은 어떨까? 장애에 대해 배타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을까? 내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느낌은 장애인을 특별히 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도적으로 여러 가지 지원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주변인들이 장애인과 함께하는 분위기를 보면, 장애는 동정이나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동료이자 이웃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평범하게 일상을 산다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커다란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대만은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밀려난 중화민국이 타이베이에 옮겨 세운 정부(내가 어렸을 적엔 '자유중국'이란 명칭으로 불렀다.)라는 특수성으로 그들에게 상이군인과 퇴역군인은 건국 영웅이다. 대만은 이들을 예우하기 위해 휠체어가 못 가는 곳이 없도록 거의모든 곳에 설비를 갖추고 있다. 독일의 보편적 개념과는 다르지만 이 또한 매우 인상 깊었다.(거동이 좀 불편한 분과 함께 해외여행을 계획한다면 비행시간이 길지 않고, 온천, 음식, 휠체어 사용 모두 큰 불편함이 없는 대만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다.)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도시개발계획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공대와 인문대가 함께 듣는 과목이었다. 수업 중 '도시의 효과적인 이동'과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대한 토론 시간이 주어졌다. 당시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은 서울시의 새로운 정책이었고, 도시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공대생들은 육교와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을 적극 설치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들에게 이동의 주체는 물류와 차량의 흐름이다. 인문대생들은 이동의 주체를 사람, 보행자로 보았기에 공대생들과는 대척되는 의견이었다.나는 아직도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을 보면 아찔하다. 양쪽으로 차가 오가는 한가운데에 섬처럼 정류장이 있으니, 이용자는 양 방향으로 위험에 노출이 되는 상황이다. 이동의 주체가 무엇이냐는 관점의 차이가상반된 결과를 도출했다.
휠체어나 목발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에게는 2년 넘게 걷지 못했던 시간이 있는데, 다발성 골절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재활의 시간도 길었다. 휠체어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회복은 더욱 힘들고 더뎠다. 택시는 비용이 비싸고 버스는 기다려주지 않으니, 차라리 수술부위에 얼음주머니를 동여매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한두 시간을 목발 짚고 걷는 것이 마음 편했다.
오래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나마의 편의도 대부분 서울 중심으로 집약되어있고 지방자치단체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장애인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이동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뭘까? 장애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절실한 '이동권'이라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권리'라 인식하기 힘들기 때문은 아닐까? 나 또한 내가 사고로 걷지 못했던 긴 시간이 없었다면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공대생과 인문대생이 '이동의 주체'를 상반된 개념으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은 말 그대로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동은 모든 일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집안에서만 갇혀 지낸다면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취업, 자립 또한 불가능한 것이 되는 것이다. 법이 제아무리 완벽할지라도, 정책에 큰돈을 쏟아붓는다 할지라도, 생각과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 나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몸부림과 같은 투쟁일 수 있다는 것,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넘사벽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번 주제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글 목차를 작성할 때 첫 번째로 정한 것이었으나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해져서 쓰기를 주저했다. 그리고 말이나 글로는 쉽지만, 마음으로 공감하기엔 너무나 어렵고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발행까지 했다가 결국 두 번이나 글을 취소했다. 공대와 인문대의 관점 차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오해가 있을 듯하여 말씀드리면 수강하던 이공계 대부분은 도시공학과, 건축공학과였고, 인문사회계 대부분은 사회복지학과와 아동보육학과였기 때문에 견해의 차이가 더 컸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연일 뉴스에 논란이 되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장애인들이 취미생활로 마음껏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었는데, 집 앞에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스포츠를 즐긴다는 건 우리 실정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과 같이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