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Pieta

미켈란젤로의 결자해지

by 은섬


밀라노에 있는 친구에게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스포르체스코 성 미술관(Sforzesco Castle Museum of Ancient Art)을 추천해준다. AI도 울고 갈 100% 의뢰자 맞춤 추천이다. Grazie, Matteo!

스포르체스코 성 미술관의 백미는 단연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론다니니 피에타)다. 숨지기 사흘 전까지 그가 손을 놓지 않았다는 미완성의 유작. 나는 밀라노에 가기 전 선행 학습하듯 로마 바티칸에서 첫 번째 피에타를 미리 감상하였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마지막 피에타와 마주했다. 별관의 작은 홀에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되어있어 관람객들이 오롯이 피에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작품의 뒷모습이 보인다. 허리 굽은 새하얀 뒷모습에 온 몸의 감각들이 깨어나 거친 모래에 쓸리는 듯 쓰라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열 발자국 남짓한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져 걸음을 빨리 할 수 없었다.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고 피에타 앞에 섰는데 발치에 고정된 시선을 들어 피에타를 바라보지 못하겠다. 보지 않았음에도 본 것만 같아서, 마치 그 눈을 들여다본 것만 같아 가슴이 에는 듯 감정이 몰아친다. 그렇게 피에타 앞에 서서 한참을 주저하다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첫 피에타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피에타 앞에서 내 안에 뭔지 모를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첫 피에타는 그의 모든 기량을 쏟아부은 화려함의 극치, 황홀함 그 자체다. "보아라! 내가 바로 미켈란젤로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지듯 20대의 미켈란젤로는 당당히 성모 마리아의 가슴 앞섶에 본인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걸작은 미켈란젤로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되게 하였지만 평생 그는 본인이 원하는 작품보다 돈 많은 귀족이나 교회 권력이 원하는 작품 활동을 해야만 했다.


천장화를 그리느라 두 눈은 점점 멀었고, 허리와 관절은 휘었다. 완벽을 추구했던 그는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작품을 위해 스스로 몸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작품에 몰두했지만 돈과 권력을 틀어 쥔 자들의 말 한마디에 몇 번이고 재작업을 해야 했다. 빛나는 그의 재능이 결국 그를 병들게 했고, 굴레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첫 피에타_이미지 pixabay


현실에서 벗어나 오롯이 본인의 의지대로 완성할 단 하나의 작품. 인생의 끝에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무덤에 놓일 마지막 작품으로 다시금 피에타를 선택했다. 자신의 예술세계의 시작과 끝맺음 모두가 피에타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피에타는 첫 피에타와 모든 것이 달랐다.


그의 첫 피에타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위해 아들보다 앳된 얼굴의 성모가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패기로 가득 찬 20대의 미켈란젤로에게는 인간의 감정보다 완벽한 미학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90의 나이를 바라보는 미켈란젤로는 자식의 죽음을 평온히 마주할 어미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피에타에는 늙고 비탄에 빠진 성모의 얼굴이 새겨졌다. 죽은 아들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보려는 어미의 절절한 심경을 그의 마지막 피에타에 투영한 것이다. 결자해지. 미켈란젤로는 삶의 끝에서 자신의 첫 번째 피에타의 오류를 그렇게 스스로 바로 잡았다.


피에타 앞에서 토해내듯 터진 감정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먹먹함에 주저앉아 가슴을 무릎에 대고 얼굴을 두 손에 묻었다.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한참을 울다가 다른 관람객들에게 방해가 될 거란 생각에 황급히 일어서는데 한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건넨다. 내가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하면서 정중히 이 작품을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부탁을 한다. 짧은 영어로 긴 설명이 어렵다고 하니까 굳이 괜찮다고 하신다. 나의 감상을 듣고 싶다고 하셨다. 미켈란젤로의 여러 피에타 중 마지막 피에타라고 말하는데 Last라는 단어에서 또 눈물이 터졌다. 마지막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슬픔은 언제나 깊고 아프다. 할아버지는 내가 훌쩍일 때마다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며 길지도 않은 설명을 무척이나 길게도 들어주었다. 할아버지는 작별의 인사를 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위로를 건넨다. 꼭 미켈란젤로 할아버지가 내게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것처럼.

Grazie, Nonno!

Grazie, Michelangelo!



입구에서 바라보는 피에타의 뒷모습


스포르체스코 성 미술관 홈페이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는 미완성이지만 나는 그 피에타가 미완성인 자체로 완성이라 생각한다. 동양미술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처럼 마지막 피에타는 미완성이기 때문에 더욱 많은 생각거리와 감상을 준다.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밖으로 나와 퉁퉁 부은 눈으로 마태오를 만나러 갔다.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를 보고 울었다고 했더니 그가 오! 이런! 틴에이저! 하면서 등을 두드려준다. 울었으니 많이 먹어야 한다고 오징어 요리를 시켜줬는데 큰 오징어가 아니고 작은 오징어다. 마태오! 많이 먹어야 한다며! 열 마리 먹어도 배 안 부르겠어!


밀라노에 가신다면 미켈란젤로의 라스트 피에타를 추천드린다. 혹여 오징어 요리를 드신다면 열 마리 추천드린다.




지난 12월 JTBC 싱어게인2 방송에서 43호 가수로 무대에 선 '김현성'님을 본 순간 첫 피에타를 완성한 20대의 미켈란젤로와 헤븐을 부르던 20대의 그가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상처 가득한 목소리로 그가 다시 부르는 노래에 마지막 피에타를 떠올렸다. 마지막 피에타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무대가 미켈란젤로의 결자해지와 같은 의미였을 거란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묵직했다.

그 후 나의 Play List에는 두 가지 Ver. 헤븐이 있다.

Perfect Heaven_20대의 그가 부른 노래

Excellent Heaven_그가 다시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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