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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ug 27. 2022

그림, 마음의 집에 머물다

내면, 자아_함메르쇼이


호~ 하고 입을 둥글게 모으고 숨을 내뱉으면 옅은 입김이 나올 것 같은 서늘함과 침묵의 정적이 흐른다. 늦가을 혹은 초겨울의 계절감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 낮은 채도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의 집안은 마치 무성영화처럼 고요하다.


실내 정경, 빛이 들어오는 창, 열린 문, 여인의 뒷모습. 분명 실내지만 분주하게 늘어놓은 물건이 없다. 빈 탁자, 빈 그릇, 빈 책상....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편안하면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쓸쓸함에 사로잡힌다. 사람마저 정물처럼 느끼게 하는 묘함. 함메르쇼이는, 실제 그가 오래 거주한 집과 아내, 여동생,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살며 생활하는 물리적인 집안의 모습을 묘사했다기보다는 집 안에서 화가가 느끼는 상태, 사색과 평온, 자신의 내면 안에 스스로 지은 마음속의 집 안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림 속 뒷모습은 타인일 수도 있지만 바로 나, 자아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정면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는 것은 소통이 아닌 관찰자의 시점이다. 존재가 타인이든, 자아이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전 단계가 필요하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함메르쇼이의 뒷모습들은 단절의 뒷모습이 아닌 소통을 위한 뒷모습처럼 느껴진다. 조용히 머무르고, 가만히 기다리고, 오랜 시간 내면을 살피는 뒷모습은 조금은 쓸쓸할지 몰라도 슬픔의 그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모티브가 있는데 바로 창과 문이다. 닫힌 문이 아닌 열린 문, 화가는 서늘하고 고요한 마음에 유리창을 내었다. 그 다행스러운 창으로 밝고 따사로운 빛이 들어오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출입문도 열어둔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마음이지만, 창을 내고 문을 열어두었기에 곧 서늘한 공간에 온기가 들어차고, 뒷모습으로만 기다리던 이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등이 아닌 서로의 가슴으로 마주하게 되겠지... 그래서 함메르쇼이의 그림은 숨 막히는 우울이 아니라 정갈한 기다림과 고요한 쉼으로 다가온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마음의 집에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 나도 그와 함께 관찰자가 되어 고요히 그 안에 머물러 본다.


 

 Sunbeams (1900) / Strandgade 30 (1909)


 Woman in an Interior (1909) / Sunlight on the Floor (1906)


Interior with Ida in a White Chair (1900)


Woman playing the piano (1901)


Four Etchings (1905) / Woman Sitting at the Table (1910)



White Doors, Strandgade 30 (1899)


Interior, Strandgade 30 (1901) / Woman at open door (1905)


potted plant on card table (1910) / Interior with piano (1901) / The Four Rooms (1914)


Interior with a Mirror, ca. (1907)


Interior with the Artist’s Easel (1910)


※ 그림 출처 : PAINTERS FROM THE 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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