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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11. 2018

생일카드 쓸 때 '사랑해'
안 쓰면 반칙이야

엄마가 생일 축하송을 목청껏 부르게 해서 도무지 쓸쓸해질 수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생일 카드는 써야지.” 

삶은 당면을 다라이에 펼쳐담아 식도록 두고, J는 안방으로 들어와 펜을 찾는다. 엊그제 복덕방 개업에서 받은 흑색 볼펜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찾으려고 하면 늘 제자리에 없다. 요즘 들어 부쩍 화가 많아졌다. ‘무엇도 제자리에 있는 적이 없어!’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고, 인생의 조각들은 모두 되찾을 수 없게 흩어져 버린 것 같다. ‘분명히 저번에 쓰고 잘 둔다고 뒀는데...’ J는 이럴 때마다 삶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다.     


화장대 위에 딱딱한 눈썹 연필이 한 자루 있지만, 하나 뿐인 딸에게 주는 편지를 그런 것으로 쓸 수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 갈색이 뭉개져 버릴 테고, 그러면 딸이 나의 마음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곗돈 붓는 날을 달력에 표시하는 빨간색 볼펜이야 두어 자루 있지만 그건 더욱 안 되지. 유달리 겁이 많은 딸아이가 놀라서 “이름을 빨강으로 쓰면 죽는대.”라며 울지도 모른다. 얘는 왜 이리 잘 울까. 또 화가 난다. 딸아이를 가졌을 때 자주 울어서 그런 걸까. 얘도 여자라 자라서 나처럼 자주 울게 될 운명인가. 소설 같은 생각을 했다가 불길해져서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내 가족을 복되게 하소서.”      


둘째가 글씨 연습을 하다 잊고 간 파란색 볼펜이 걸레받이 옆에 놓여 있다. 어릴 때부터 볼펜을 써 버릇하면 안 되는데, 손가락이 아파도 연필로 꼭꼭 눌러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둘째는 아들이라 그런지 딸과 달리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말 잘 듣고 착한 우리 딸에게.” 하는 수 없이 파란색으로 카드의 첫머리를 쓰기 시작한다.      


“너는 아기 때부터 참 순하고 착했어, 엎드려 놓아도 뒤척이지도 않고 소리 없이 잘 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놀라서 뒤집어보곤 했단다. 그 작던 아가가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하는 아이로 자라서 참 엄마는 기쁘다. 다만 체육을 못해서 엄마가 좀 속상하지만, 노력하면 된다.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 더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어른이 되거라.”      


다음에 또 무엇을 쓰지. 쓰다 보니 또 잔소리가 되어버렸나.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고 책도 많이 읽지 않아서 어려운 걸까.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커피 마시며 하루종일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카드를 어떻게 마쳐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우리 장녀에게.” 사랑한다고 쓰고 나니, 마무리를 한 느낌이 든다. 생일카드를 주면서 안아주고 싶은데 나는 늘 쑥스럽다. 카드를 길게 쓰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엄마! 웅이가 당면 만져!” 딸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화뜩 든다. 


어쩌나, 당면이 다 불어버렸겠네. 펜이랑 종이만 잡으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어.     



엄마의 생일 의례는 어린이의 쓸쓸한 마음을 날려버렸다 

어릴 적 생일날을 생각하면 늘 엄마가 준 꼼꼼한 생일 카드가 떠올랐다. 그 카드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엄마가 어떤 문장을 써 주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엄마의 입장을 상상해 써 보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잡채를 “네가 잡채 좋아하지.” 하면서 함지박 가득 무쳐준 것, “생일 케이크는 꼭 사야 해. 떡케이크는 별로야. 조각케이크는 안돼. 통 케이크로 사야 초를 다 꽂지.”라면서 다 먹지도 못할 큰 케이크를 사주던 기억이 났다. 


아빠는 생일 축하를 쑥스러워 했다. 자신의 생일 뿐 아니라, 자식들의 생일까지 그랬다는 게 문제였지만. 생일 뿐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을 어색해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같이 촛불 켜자”고 졸라도 자는 척을 했다. 좀 이따 홍콩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데크에 넣을 걸 다 아는데도 코고는 시늉을 했다. 아빠가 너무 미워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엄마. 아빠 안 온대.”라고 이르면 엄마는 말했다. "아빠 방 문 닫아줘."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이 든 지금도 다 알 수는 없다. 작은 접시에 케이크를 한 조각 담아서 아빠 가져다 주라고 했을 때, 엄마는 기가 막혀서 웃었을까. 아이들이 자면 이따가 혼자 좀 울어야지, 생각했을까.   

   

엄마가 차려준 생일밥상은 부족함이 없었다. 비싼 한우 양지를 끊어다 푹 끓인 미역국, 이웃집에 가져다 주면 ‘너네집 다음번 생일은 언제니’ 할 정도로 맛있던 잡채, 양파를 잔뜩 썷어 넣어 달달하게 볶은 소불고기, 기름에 고소하게 지진 동그랑땡, 내가 좋아하는 건포도와 사과에 찐 감자를 넣은 마요네즈 사라다, 내가 좋아하는 하얀 부분을 많이 담은 배추김치까지. 

아홉 살에도 열 살에도 열 한 살에도, 언제나 일정했다.  생일날마다 꺼내는 네모지고 커다란 상에는 빈 곳 하나 없었다. 가끔은 빨간 장미와 하얀 안개를 섞은 꽃도 한 다발 꽂혀 있었다. 아파트로 이사가려면 조용히 입으라며, 내가 10세에도 13세 사이즈 바지를 사주곤 했지만, 축하 꽃은 샀다. 


“엄마, 케이크 둘 곳이 없어.” 즐겁게 외쳤다. “그럼, 웅이 머리 위에 놓아. 웅이는 머리 흔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심심한 농담에 셋이서 막 웃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으하하하."


'사랑하는' 부분에서 언제나 웃었다. 더 크게 웃었다. 쓸쓸한 마음이 썩 물러갔다.      



생일노래, 생일케이크, 생일카드....엄격한 규칙 3가지 

우리집에는 명료한 생일 규칙이 있었다. 


첫째, 생일케이크에 불을 켤 땐 집의 불을 다 꺼야 되고, 

둘째, 불을 끈 상태에서 꼭 박수를 치며 생일 노래를 끝까지 불러야만 하며 

셋째, 생일 축하카드를 꼭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남동생에게도 꼭 쓰라고 했다. “축하해, 한 마디라도 써.” 동생이 그냥 말로 하겠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몹시 엄하게 말했다.      


스무살이 넘어 사는 게 바빠져서는, 엄마 생일에 향수만 사서 포장하고 카드는 쓰지 않은 적이 있다. 

“네가 빼 먹은 게 있네.” 사감선생님처럼 단호한 목소리.


당장 방에 들어가서 편지지를 찾아 축하글을 썼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엄마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었다. 

“맘에 든다. 잘 둬야지.” 

합격! 


몇년 후 어느 생일에도, 생일 카드를 안 썼다. 바쁘진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축하해요, 사랑해요' 쓰는 게 유치하고 시큰둥해졌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신입사원이어서 아주 바쁘고, 직장생활에 지쳐 세상에 시니컬해졌었던가. 엄마는 몹시 섭섭해했다. 오십만원인가 월급에서 뚝, 떼어서 드렸는데도 용서가 없었다. 


 “글 안 써주면 진심이 없는 거야." 

냉정해. 툴툴거리며 방에 들어가 돈 봉투 뒷면에 넉 줄인가 썼다. 

“건강하시고요. 이 돈으로 이쁜 옷 사서 입구 멋진 남자 좀 만나시오. 음악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좋은 냄새 나구 말도 멋지게 하는 남자분으로.” 

엄마는 또 깔깔깔 웃었다. 언제나 내 글의 열혈독자는 그녀. 

“괜찮은 남자 씨가 말랐다. 다 냄새나구 지 말만 한다. 돈은 고맙다, 야.”      





사랑이 모라고 네가 먹먹하고 막막해서 어쩌니 

오랫동안 생일카드는 우리 집 식구만의 룰이었다. 내가 B를 만나자 엄마는 B에게 한국어로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두 걔가 좀 어색해.” 한국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을 해 주면 “진짜 맛있어요. 정말 고마워. 다음에 또 만나.” 라고 하는 외국인 사위와 소통하고 싶어서, 엄마는 자꾸만 편지를 쓴다. “니가 영어로 잘 번역해죠야 돼, 귀찮다구 대충하지 말구!” 못미더운지 집에 가는대로 카톡카톡카톡. 


엄마가 싸온 생일 밥상으로 지나치게 배를 불린 뒤, 둘이 드러 누워서 카드를 읽었다. 


먼저 한국어로 읽었다. 

“사랑하는 바티에게. 

사랑이 모라구 집도 절도 없는 이 나라에서 맘고생이 많네. 

지금은 비록 막막할 적도 있고, 

내가 여기서 모하는 걸까 먹먹하기도 할 것이고....


은성이의 짝꿍이 되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건강해.


오 우리 모두 행복하자.“     


엄마의 글솜씨가 전과는 달라졌다. ‘오’는 뭘까. 외국어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일까. 또 눈물이 양쪽 눈꼬리로 흘러서 소매로 쓱쓱 닦으며 웃었다. 귀여워라. 눈물이 또 나려고 해서, 콧잔등에 힘을 빡 주었다. 


“먹먹. 막막 모예요? 짝꾹 모예요?”

B가 묻는다. 먹먹, 막막. 먹먹, 막막. 딱따구리처럼 노래를 부른다. 


보통 생일카드에는 축복이 가득해야 마땅한데. 엄마의 카드엔 걱정이 서너줄이다. 우리는 매일 먹먹하고 막막하지만, 그만큼 엄청나게 신나고 행복하고 즐겁고 찬란한데도 엄마는 둘 중 한명은 꼭 상대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하는 우리의 운명을 마음 아파 한다. 가여워한다. 


어떻게 번역할지 몰라서 또 대충 번역한다. 미래가 밝지 않다는 소리야, 하고는 ‘아, 아니다. 우리 미래가 회색은 아닌데.’ 응, 한국 엄마는 자식이 뭘하든 계속해서 걱정해. 그러니까 걱정은 사랑이지. 


서툴게 영어로 의미를 말해주곤 뿌듯해진다. 

짝꾹 아니구, 짝꿍. 운명의 상대라는 의미야. 

또 내 멋대로 번역을 해준다.      




엄마는 B의 엄마인 도미니크에게도 편지를 썼다. 갑자기 같이 살기 시작한 딸과 딸의 애인도 버거운데, 사돈이 갑자기 한국에 놀러온다는 소식에 엄마는 또 몇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언제나 완벽한 준비를 좋아하는 엄마답게, 손으로 꽃수를 놓은 비단 주머니에 유기 수저, 젓가락 세트를 넣어 가져왔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정성들인 편지.    

  

넷이서 처음 만나던 날, 한정식을 먹고 호수공원 평상 위에서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엄마가 깎아온 참외와 쥐포와 땅콩에 카스 캔맥주를 마시는 세 명 앞에서 엄마의 편지를 영어로 낭독하는 것. B는 내 영어를 다시 불어로 번역해 도미니크에게 전달했다.      


“이역만리 땅에 아들을 두고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겠느냐, 인연이란 게 흐르는 물 같아서 이렇게 국적도 문화도 다른 아이 둘이 만나게 하다니 신기하다, 전혀 모르던 우리가 새롭게 만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이 되었다”는 등의 문장이 얼마나 잘 번역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대충 웃기게 번역했다. 그래서 다들 웃었고, 그럼 뭐 된 거지.     


도미니크가 사온 보라색 꽃화분을 보며 엄마는 아주 많이 기뻐했다. 

“전생에 인연이었나봐. 어떻게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처음 보는 순간, 참 인상이 좋더라. 긴장을 했는데, 그이가 웃는 게 화사해서 내 맘이 갑자기 편안하드라.”     


이게 다 엄마 탓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엄마가 생일카드에 늘 ‘사랑한다’고 써 줬기 때문에, 나는 친구와 애인이 나에게 생일카드를 주면 조금 떨렸었다. 혹시나, 사랑한다는 말이 없을까봐서 숨을 훅, 들이쉬고서야 카드봉투의 모서리에 손을 대곤 했다. 

쑥스러움이 많은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쓰곤 했다. 건강해, 오래오래 만나자, 행복하길 바란다는 등의 말. 지금은 잘 안다. 그래도, 욕심이 많아서 늘 바란다. 왠만하면 사랑한다고 꼭 써 주기를. 늘 모든 관계가 불안한 나는 꼭 그래야만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니까. 세 글자, 혹은 네 글자면 간단하게 되는 일이니까.      


그토록 표현을 좋아하는데도, 엄마는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온다고, 간지러운 일이라고 배운 세대라 그럴 거다. 걸을 때 손을 잡은 적도 없다. “난 손 잡으면 불편하고 불안해. 갑갑하구. 언제 놓을지 긴장되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하면 돌연 무뚝뚝해지는 사람. 누가 안아주면 돌하르방처럼 굳어버리는 사람.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어져 나오는 사랑을 어떻게든 전해주고 싶어서. 엄마가 검은 볼펜을 찾아내어 미끄러운 생일카드에 한 자 한 자 눌러 적었듯. 


자꾸만 미끄러져 내리는, 놓쳐버리는, 흩어져버리는 마음을 모두 적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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