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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20. 2018

나의 불안과 변덕까지
고스란히 사랑해 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나는 주방 테이블에 딸린 의자에 앉아 현미밥을 비비고 있다. 배는 고프고 B는 이미 맑은 수프로 가볍게 식사를 끝냈고 새로운 요리를 할 기력은 없으니, 찬밥 한 덩이에 여러 가지 잎채소를 얹기 시작한다. 레터스, 로메인, 치커리처럼 각각의 다른 초록색들을 손으로 찢어서 얹고 있노라니, 갑자기 즐거운 놀이를 하는 듯하다. 손가락에 살며시 묻어나는 진초록의 향기. 대접 안은 커다란 숲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오이는? 당근은? 에그도? 냉장고 속 재료를 읊고 있던 B가 갑자기 검은 돌솥을 꺼내온다. 

“비빔밥 그릇?” 

우리집에서는 언제나 돌솥 비빔밥을 먹었기 때문에, B는 그냥 비빔밥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오늘은 뜨겁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be hot.” 

한국어로 글을 많이 쓰고 한국어로 강의를 잔뜩 하고 집에 돌아온 날엔 영어회화 왕초급반 학생의 실수를 한다. 한국어에서 영어로 스위치를 하기 전이라서다. 

“네, 오늘은 은성씨가 뜨거우실 필요 없어요.” 


B는 진지하게 돌솥을 다시 찬장 안에 집어넣는다. 대신 지난 크리스마스에 프랑스에서 가져온 오리 다리 (마그레브) 말린 햄을 꺼내 저며서 준다. “오리고기는 샐러드의 최고의 친구야.”      


배가 고픈 줄 알았는데, 저녁 내내 커피를 연신 마셔댄 탓인지 혀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맛있다. 맛있어.”를 연발하며 수저를 입에 넣는다. 자기가 기른 채소에 과하게 찬사를 보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B는 무도회장에서나 할 법한 인사를 한다. 보이지 않는 중절모를 벗어드는 척, 오른 다리를 왼다리 뒤로 보내고 몸을 살짝 숙이며. “오천 원입니다.”      




실없고 시시한 대화를 하고 있자니, 굳었던 얼굴에 점점 미소가 피어오른다. 모카포트 안에서 따뜻한 커피가 포르르 끓어오르듯 추웠던 몸도 마음도 데워진다. 약 한 시간 전까지는, 온 세상의 모두를 100%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 대해 절망에 빠져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딴 사람으로 자랐지. 버스에 오르면서는 기사님께 꾸중까지 들었다. “커피 들고 타면 안 되는 것 알죠?” 언제 서울법이 바뀌었나. 자조는 자조를 부른다. “이런 것도 모르고. 점점 보통의 삶과 멀어지는구나.” 허리까지 아파왔다. “죽으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일궈낸 나놈, 너무 멋지다. 치얼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B가 귀신같이 맞춘다. “혼자 웃어요, 왜? 나는 정말 멋이 있다, 생각했어요?” 그는 나를 '자신에게 키스를 보내는 사람'이라며 놀린다. 기분이 풀리니, 계속되는 놀림에도 관대해진다. 



한달에도 수십번,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성격을 겪으면서 처음에 B는 꽤 당황했다. 결혼은, 상대의 빛인 줄 알았던 것의 뒷면에 딱 그만큼의 어둠이 있음을 알아내는 과정인 것 같다. 용기로 보였던 것이 무모함이었고, 다채로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습관화된 불안이었으며, 배려심이라고 보였던 것이 눈치봄이었으며, 불행에도 잠을 잘자는 쿨한 성격인 줄 알았던 것이 망각을 이용해 감정을 회피하는 것임을 알아채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그에게, 나와의 결혼은. 


어제의 나를 전혀 믿지 못하고, 그래서 내일의 나도 결코 믿지 못하는, 그래서 늘 흐물흐물한 액체같은 나를 보며 그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거,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모두가 너 참 잘했다고 하는데, 그러든 말든 칭찬의 틈바구니에서 '건졌다, 이놈!' 하면서 굳이 단 하나의 결점을 찾아내는 모습을, 그리고는 '망했어, 남들이 곧 내가 별 거아닌 걸 알게될거야.' 우는 나를 보고, 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누구에요?" 


나는, 

'내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산 점퍼를 십 년째 입는 사람이다. (세탁소에서 이 점퍼를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청천벽력이었다. 머리칼을 모두 잃은 사람의 표정이라니...) 40년 동안 매일 똑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양 목장에 일하러 가는 아버지에게서 자랐다. 십대 때는 매일 다섯 가족이 모여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니?" 태어나서 대학진학을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매일 같은 질문에 답하며 자랐다고 했다. 여름이면 언제나, 언제나 할아버지 댁에서 캠프를 했다. 언제나, 언제나 같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건, 상대와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계속 확인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을 박탈당한 기분이 되었다. "왜, 나에겐 그런 추억 하나도 없어? 시험 많이 틀렸다고 손바닥을 맞거나, 엄마 이혼 하라고 권유한 기억만 있어, 왜? 학생주임의 당구대로 가슴팍을 찔린 경험만 있고. 친구들이 성적 떨어졌다고 뺨 맞는 것을 바라보며 미안해하고. 어린이날에는 소풍 가기로 약속한 아빠가 집에 오지 않는 바람에 울면서 치킨을 뜯었는데. 언제나 부모의 표정을 살피며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안절부절했는데!" 



아침을 먹다가 침대에 달려가 엎드리며 “나는 너무 슬퍼. 흐흐흑.” 오열하는 사람이 저녁에 들어올 때는 아까 울먹인 것을 새까맣게 잊고 “투데이 워즈 쏘 나이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처음엔 그의 안정성이 부러웠다. 매일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홍차를 우리고 빵을 굽고 꿀과 버터를 바르는 것을 보면서도 부러웠다. '야, 너는 어느나라를 가도 아침 무드를 유지하면 무서울 없겠다.' 


어느날은 밥이 좋았다가 어느날은 라면이 먹고 싶었다가 어느날은 아무것도 먹고 긴장된 공복을 유지하고 싶은 나는, 매일 매일 똑같은 그의 마음이 부럽고 가지고 싶었다. 


스물아홉 무렵,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피 속에 숨어있던 여행자의 성향을 발견한 그는, 나와의 삶도 여행처럼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여러 나라가 한 사람에 있어요.”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마음이 힘들면 영어로 토로하기가 싫어지는 성격 탓에, 선뜻 마음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는 다행히 사람의 표정을 아주 잘 읽는다. 


하나의 시그널이 더 있다. 귀가한 후, 고양이를 얼마나 오래 쓰다듬고 있는가. (백팩을 멘 채로 아주 오래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위험신호다) 오늘 고양이도 외로웠던지, 내게 안겨서 아주 오래 고르릉거렸다. 나는 너를 처음에 참 무서워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가까워졌는지, 나는 ‘감격증 환자’답게 또 쉽게 감격했다. 목 뒤의 털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니, 미코는 앉은 내 다리에 턱을 고이고 눈을 감는다.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주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쪼끄만 발톱 10개에 힘을 준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다가, B는 평소보다 과하게 스윗하기로 작정한다.      



어젯밤엔 ‘아무도 모르는 행복’을 중얼거리며 잠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행복을 전시하지 않는, 근사한 정장을 입고 결혼기념 사진을 찍어 걸어두지 않는. 누구에게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행복을 아주 많이 모으고 싶다. 


글이 되지 않고 그림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내가 가진 몇 개의 표현도구로 도저히 자아낼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행복을. 낮 동안에 고단해진 마음을 단숨에 회복하게 만드는 스프링 같은, 


내가 기어코 만들어낸 탄력 좋은 행복을.          


아무도 모르게, 작고 작게 살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환갑이 넘으면 B를 데리고 폴카 클럽에 가야지.

어지러워하는 그의 두 손을 놓지 않고,

빙빙빙빙 돌려야지.

나는 어지러운 게 좋아! 

                                         


행여나 너무 성공하거나 유명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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