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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16. 2018

네 번째 심리상담을 마치고
붕어빵을 사 먹었다

 상담을 마칠 때마다 눈물바다가 되는 건 아니었다. 

붕어빵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었다. '이곳에 몇 번 더 오면, 저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게 될까.' 그리고 어제, (예상보다 매우 빨리) 미니 붕어빵 4개를 천원에 사 먹었다. 이야-후! 


하지만 어깨를 추욱 내리고 무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연기를 시작했다. 1회차 상담을 마치고, 바로 이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는 B가 설거지를 하던 중에 달려와 안아주었으니까. 허그에 마음이 녹아서, 또 갑자기 흐물하게 녹은 빙수가 되어버려서 울먹이자 안은 채로 번쩍 들어올려 주었다. (세상에!) 그때 참 행복했기에, 그래서 또 그렇게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 묻은 단팥을 들켰다. B는 팥가루를 닦아주며 흰눈을 떴다. 

“혼자 봉오빵 사 먹었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봉오빵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어?”      


애인은 ‘망원동 붕어빵 맵’을 그리자고 말할 정도로 붕어빵에 집착한다. "어제 11시에 붕어빵 차가 있는 걸 봤는데....지금 10시밖에 안 되었는데!" 그 세상 잃은 표정이라니! 붕어빵 장수가 종이봉투에 하나, 둘, 셋, 넷 붕어빵을 담는 광경을 바라볼 때 그의 은 무섭도록 빛이 나는데. 그 눈빛으로 갑자기 내 가방을 뒤졌다. “혹시...몰래 가져왔어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월요일밤에 웃을 수 있을지, 처음에는 몰랐다.    


한없이 두려워했던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나 자신이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아주 드문 순간이다. 

“지금도 무서워?” “아니. 무섭지 않아. 이제는.” 

혼자 묻고 답하며 또 뿌듯해 한다. 두려운 것이 있었다는 사실은, 도전했다는 것이니까. 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게 두려운 줄도 몰랐을 테니까.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내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

 ‘두렵지만, 기어코 나아가는 사람’      '


언제나 나 자신을 과하게 칭찬하지 않으면, 곧잘 시무룩해지는 성격. 귀찮더라도 번거롭더라도 시간을 내어 꾸준히 칭찬해 줘야만 한다. 삶의 두려움 101가지 중 하나를 무찔렀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전사처럼 느껴진다. 이것 좀 봐, 내 근육 좀 봐. 근사하지 않아?      




처음 M 플레이스에(M으로 시작하는 이니셜이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가던 날에는 긴장과 걱정이 위장에 가득 차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저녁 먹었어요?” 선생님은 그냥 인사차 물은 것일텐데, 참으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안 넘어가서 못 먹었어요.” “저런.”나의 첫 심리상담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월요일 밤에 M플레이스에서 나와 붕어빵을 사 먹었다는 사실은, 내게 참 놀라운 거였다. 그럴 만한 힘이 남아있다니. 


첫날엔 엄마와 통화하다 울며 소리를 질렀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가족이야!) 

둘째날엔 내 집이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멍했고

셋째날엔 전철 하나를 보내고 지하철역에 좀더 앉아있었고, 


넷째날엔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네! 

빵은 따끈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네 개를 다 먹자, 집에 갈 힘이 생겼다. 


주머니 속 교통카드를 확인했다. 아침에 나올 때 일부러 소파에 올려둔 정말 재밌는 에세이책과 무릎담요와 고양이를 떠올리자, 춥지 않았다.      



매주 한번 월요일마다 50분씩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말이 길었다. 내게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발로 상담센터에 찾아가기까지, 내 선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했다. (그러다 외쳤다. 항복! 네, 상담료 내러 갈게요)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는, 페인트칠을 한번 했다. 낡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와 온 몸에 오렌지색 방울을 튀겨가며 열심히 붓을 움직였다.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아버린 마음이 두려울 땐, 생전 안해본 짓을 한다. 마음 속이 잿빛이니 벽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자 했다.      


흰 벽의 절반이 귤주스를 쏟은 것처럼 되었을 때, 바닥에 주저앉아 가만히 있었다. “그냥, 울지 그래?” 혼잣말을 했다. 다음번 우울이 찾아왔을 땐,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더 칠할 벽도 없고. 쇼핑도 할 만큼 했고.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으니, 울 수 밖에. 돈이나 품이 들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주변사람들이 당황했다. 홑이불을 눈물로 적셔서 빨래방에 가야 한 적도 있다. 3시간 동안 울었는데, 더 울려면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두르면, 조금 괜찮아졌다. 둥그런 고치같은 모양이 되어서 훌쩍훌쩍 우는데 B가 말했다. “나, 상담 가야 할 정도로 이상해?” 이상하다, 아니다, 대답은 없이 그가 나직나직 말했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상담을 받아본다면, 지구는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난데없이 또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거야? 


“상담을 받고 자신을 잘 알게 되면, 그러면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 편안해져. 자신을 다룰 수 있게 돼. 

자신의 ‘어떤 면’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건 아니지만, 그 부분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지.

그러면 그만큼 행복해지지 않겠어?"     


그리고 마침표를 찍듯, 한번 더 말했다. 

“모든 사람이 상담을 받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어쩐지 우울해졌다고 했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우울했다고. 그래서 상담센터에 다니기 시작했고, 여행짐을 꾸렸고, 유럽과 아주 먼 아시아에 워킹홀리데이를 왔고, 그러다 어느 금요일 밤 한국 여자를 만난 거다. 그러다가, 이곳에 ‘삶’이 생겨버렸다. B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멋진 나도 못 만났겠네?”

또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농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건, 깊은 물속에서 나왔다는 신호다. 

“그렇지. 갑자기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지네. ‘도와주세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소리내어 웃으려고, 얼굴을 잔뜩 가린 이불을 걷어내 버렸다. 



상담은 이상한 사람만 받는 게 아니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하는 '선택'이며

나는 그 '선택'을 하는 멋쟁이라는 사실이 나를 도왔다.

언제나 우쭐해지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참 좋은 설득이었지, 뭐야. 


                               

파이팅, 가벼워질거야, 곧 날 수도 있게 될 거야. '상담갈 때마다 다리가 100킬로그램같아'에 대한 B의 답장이었다.




아직은, 매주 월요일마다 두 발이 공중에 뜬 기분으로 지낸다. 월요일 저녁에 상담이 있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갈팡질팡하다. "그럼, 오전에 해야겠네?" 상담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오전에 상담 받으면 오후에 불안정할 걸요." 처음엔 화요일 오전까지 기분이 가라앉아있었지만,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가 지날수록 점점 그 '가라앉음'의 시간이 짧아졌다. 뭐든, 시간이 필요한 법 아니겠어요? 1회차 상담을 마치고 너무 우울해져서, 2회차에 가지 않을 누군가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 목적을 깨닫는 일은 드물다. 뭔가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데, 나는 쓰기 시작한다. 지금 이 글도 그렇게 시작했다. '붕어빵 이야기를 써야지'라고 용기를 내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붕어빵에 관한 이야기라고 핑계를 대니, 힘이 났다. 




파이팅, 가벼워질 거에요, 곧 날수도 있게 될 거에요


처음엔 밥도 안 넘어가겠지만, 

네번째 쯤에는 길에서 붕어빵도 야무지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덜 힘들게 됩니다. 

지금, 고민하시는 분들. 집에서 가까운 상담센터 가세요.


거기도, 따끈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붕어빵을 파는 트럭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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