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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1. 2019

너무 서둘러서 서툴러지는 위로

"콩팥이 하나여도 잘 산다던데?" 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스무해 전 베스트 프렌드에게 콩팥 하나를 떼어 주었다. 의사가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분입니다. 관상을 봤을 때 당신과 콩팥 일치도 99퍼센트라구요.” 등허리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와 친구가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그의 눈빛이 간절했다. "네 인생 최고의 순간일 거야. 한 생명을 살릴 기회..." 내가 준 콩팥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연구실로 돌아가 인공 콩팥 개발에 성공했고 이윽고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소식에 전세계 콩팥질환 환자들의 가족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내 콩팥을 사수했군..."이라는 안도도 섞여있었음은 물론이다.


평행우주에서 나는 어쩌면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선행에 의한 결과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처음 내 콩팥이 하나뿐이란 사실을 안 것은 스물일곱 즈음이었다. 요통이겠지 싶어 며칠간 묵힌 위 통증이 극심해져 병원에 갔다. 초록색 젤을 바른 배 위로 기계가 빙글빙글 돌았다. 

“이상하네? 진짜 이상하네? 아, 이럴 리가 없는데..."

내 몸을 360도 돌린 뒤, 의사가 말했다. 혹시 남한테 신장 있으세요?

“콩팥이 원래 두 개인건 아시죠? 근데 하나가 안보여요.” 


초음파로 보이지 않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심장이나 위, 간이 하나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하나가 없어도 죽지는 않는데 두 개여야 하는 것. 우리 몸에서 콩팥이 그랬다. 남들보다 두 배 큰 콩팥 하나와 티끌만한 흔적 하나의 사진을 함께 보고 나온 뒤 엄마는 병원 화단에 앉아서 훌쩍였다. 

“미안하다. 줄 게 없어서 장애를 줬네 딸한테..."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잔뜩 긴장을 하고 간 병원이었다. 어쩐지 시시한 기분이 되었다. 의사는 나의 대왕 콩팥을 마치 원무과 직원 평하듯 말했다. 참 근면하네요. 


연신 눈물을 찍어 내는 엄마를 달래며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 이 정도 개성이라니, 기분이 괜찮은데? 보라색 브릿지를 하거나 젖꼭지에 피어싱을 하는 정도의 어설픈 일탈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특징 하나. 

“사실은 한쪽 귀가 안 들려요. 그래서 나는 입술을 자세히 봐요. 잘 들으려구요.” 라거나 “사실은 내게 세상의 색깔이 두 가지로 보여. 색을 구분하지 못해.” 같은, 결핍과 고독을 과시하는 부류의 플러팅에 약한 터였다. 이십대는 그래도 된다. ‘예술가에게는 상처나 장애가 필수적이잖아?’ 아, 멋지다. 결핍은 근사해.      



과시할 곳이 없어서 설렘은 곧 사그라들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출근해 저녁이면 참치김밥에 떡라면 세트가 호사인 직장인에게 개성은 별 필요가 없었다. 대한민국에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때, 파티션 사이로 사수의 비명이 들리곤 했다. 나 좀 봐, 큰일 날 뻔했어! 데톨을 휘핑크림처럼 듬뿍 짜 바르며 안도하는 그를 보며, 절대로 내 작은 장애를 입 밖에 꺼내지 말지어다, 결심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장애를 굳이 드러내는 바보는 한 명도 없었다.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의 수면이나, 아이를 셋 낳는다거나, 감기몸살이 이틀 안에 낫지 않아 팀에 피해를 주는 것은 모두 '좀 이상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문제로 취급되었다. 


업무에 손실을 일으키는. 완벽한 근면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는. 그러니까 좀 모자란.      


나이가 들면 작은 모자람은 뻥튀기 기계에 들어간다. 크나큰 위험이 된다. 과로와 ‘콩팥 하나 없음’의 콜라보는 30대 후반이 되자 질병을 불러왔다. 천식은 과로와 운동 부족 때문이었지만, 180이 넘는 고혈압은 기도 안 찼다. 콩팥 유무와 관련이 있냐고 재차 의사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그게 왜 안 믿기세요? 인간에게 불필요한 장기는 없어요. 떼어도 괜찮거나, 두 개 중 하나가 부실해도 되는 건 없다구요. 인간 몸의 균형이 깨지잖아요. 단 하나라도 없으면 그 부담을 다른 장기가 다 나누어져요. 00씨는 간 심장 혈압 위 다 조심하셔야 된다구요. 


멀미가 심한 것도 영향이 있나요? 

/네, 논문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널리 알려지지 않았죠? 

/드문 일이니까요. 콩팥 두 개인 사람에게는 남일이잖아요. 남일인데 무슨 관심이 있겠어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바빠요.

/그럼 가족이 아파도 콩팥 떼주면 안되나요?

/신나서 떼주겠어요? 신장이식 수술을 한 뒤 건강이 안 좋아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아들 말고 딸에게 부탁하잖아요. 

/저는 그럴 걱정은 없네요. 하하하.      



심리상담사는 “겸연쩍어요. 엄살 부리는 것 같아요. 큰 병도 아닌데...” 라는 내 반응을 빨간색으로 메모했다.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난 진짜 아프다'고 인지를 해야만 말할 수가 있다. 혹시 꾀병 아닌가, 게으르고 싶어서 아프다고 착각하는 게 아닌가, 여러 번 되짚어봐야만 고통은 겨우 인지가 된다. 한밤중에 신우신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갈 때는 119에 전화를 걸어 헛소리를 했다. “제가 119 부를 정도는 아닌데요...가까운 대형병원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너무 아파서 전화번호 검색을 못하겠는데요....” 부리나케 119 구급대원들이 왔다. 상담사는 내게 완벽이나 근면에 대한 강박이 심한 것 아니냐며 물었고, 나는 “한국인들 다 그러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인식하고 난 뒤,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멀미가 극심하고 쉽게 얼굴이 하얘지는 사람을 보면 “앗, 너도?” 한다. 부작용이나 통증에 대해 본인이 말하기도 전에 “콩팥 하나밖에 없어도 잘 산다던데?”라는 위로를 들으면 어쩐지 서글퍼지니, 라고 묻고 싶다. 저, 제가 본인인데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요...힘내라고 하는 거면 고마운데, 진짜 내가 몰래 아프고 있었으면 어쩌려구? 그러니까 그거 좀 아무 말이란 말이다. 나는 좀 섭섭하다. 그래서 내가 쉽게 지치는 것이라고 실컷 징징대고 싶단 말이야. 내 기회 뺏지 말아라. 그거 아시죠. 부모님들이 쉽게 ‘섭섭하다’ 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아파서 그래요...     



성정체성이나 장애, 부모의 이혼처럼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들을 때 우리는 서두른다. 착한 우리는 너무 쉽게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려 하기도 한다. 마음씨 고운 내 친구 한 명은 "언니, 신장도 하나만 있어도 잘 산대요. 괜찮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장애나 고통에 대해 들을 때, 서둘러서 ‘괜찮아, 괜찮아.’하며 서둘러 이런저런 감정이 드는 것을 봉합해 버리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정상과 비정상이 아주 명확히 나뉘는 사회니까, 내 사랑하는 친구를 빨리 ‘정상’에 넣어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올까. 디스크 환자에 대해 화들짝 놀라지 않는 것처럼, 그 모든 ‘없음’이 비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도 아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친구는 친구나 부모의 말들에 지친다고 했다. "그거 마음의 감기 같은 거래. 별 거 아니래." 별건지 아닌지 본인이 얼마나 공부하고 연구했을까. 그저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마음은 좀 어떠니?"하고. 


오늘의 마음은 어떤지, 오늘의 피로는 어떤지, 오늘의 콩팥은 어떤지. 상냥하게 묻는다 해도 상대는 입을 다물 수도 있다. 너무 아프거나 너무 피곤해서 너무 기운이 없어서, 내일 말하고 싶어서. 그러면 기다리자. 그러면 된다. 질문과 기다림, 그것이 우리의 대화를 대화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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