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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1. 2019

제주 여행일기

여행을 싫어하는 여행기자로 오래 지냈다. ‘여행’은 내게 ‘검색’이었다. 여행, 하면 스케줄 표에 30분마다의 동선을 짜고, 장소마다 촬영해 와야 할 거리를 찾아 시안을 마련하는 일이 떠올랐다. 메르스 사태 때, 고속 버스에 나만 달랑 타고 간 여행 촬영은 작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누구도 여행하지 않는 시기에도 여행을 갔다. 한여름에 옥수수밭 속에 들어가 피사체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었다. 그늘 한 점 없는 무령왕릉을 누비며 사진작가는 티셔츠를 네 번 갈아 입었다. 죽을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죽어야 하니까 제발 집에 가고 싶었다. 촬영날 비가 오면 자책했다. 비 안 오는 날을 잡았어야지 바보야. 


여행기자에게 여행의 변수들은 업무 중 오류일 뿐이었다. 예측하고 준비하고 계획을 잡는 게 싫어서 여행을 갈 때면 '나는 젖은 낙엽이 되어도 되니?'라는 의욕없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친구만 따라 다녔다.      



검색을 하지 않는 여행은 B에게서 배웠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읍내에 서서 휘휘 둘러본다. 버스를 타면서 '터미널'이나 '체육관' 이름이 붙은 곳이면 내린다. 그 근처면 식당이 있겠지, 하는 심산. 일하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내 폰에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외국인인 것처럼 함께 다녔다. 뭐야, 여행 너무 재밌네!      


식당을 찾는다. 식당의 이름을 본다. “000 굴국밥.” 좋아하는 식재료인지 아닌지만 생각한다. 프랑스에는 굴이 비싸지. 우리는 익힌 굴의 달고 쌉싸래한 맛을 좋아하지, 그럼 점심은 굴국밥이다, 이런 식이다. 또는 손님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행복해 보여? 맛있게 씹는 것 같아?” 우리는 눈을 마주친다. “들어가자!”      


제주여행을 가도 흑돼지도 고기 국수도 먹지 않았다. 고깃국물에 면을 넣은 것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일본 라멘 뿐인데, 그동안엔 왜 줄을 서서 고기 국수를 먹었더라? 남들이 하길래 나도 꼭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남들이 꼭 하는 것을 나는 하지 않을 때, 평상에 누워 다리나 떠는 것처럼 마음은 한갓졌다. 아, 셀프 탈락자의 자유로움. 


외할머니가 “밥 먹고 또 자?” 라고 말하는 걸 졸면서 듣는 기분 알아요? 바로 그러한 평화로움. 계획이 없으면, 놓치는 것도 없고 조바심도 나지 않는구나. 게으른 건 너무나 좋구나! 여행이 좋아졌다.      



B의 어머니 도미니크 아버지가 로항이 프랑스에서 놀러오셨다. 한국, 하면 제주도지! 하면서 진에어를 탔다. 로항은 비행기 공포증이 몹시, 몹시 심각하다. 한국으로 오는 에어프랑스에서 밥도 거의 안 먹고 눈도 거의 안 감고 10시간을 버텼다. 마음이 아파서 최고급 바게트를 두 개 사와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에쉬레, 엘엔비르, 만토바...버터도 종류별로 5개를 골라 냉동해 두었다. 뭐, 달리 해 드릴 것도 없고 해서요. 


하지만 허술한 나는 또 로항을 긴장시켜 버렸다. 영어 이름으로 비행기 표를 산 뒤 여권 없이 주민등록증만 달랑 들고 온 거다. 아디다스 러닝화야, 달려라. 달려가 발권을 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원래 안 되는 이번 한번은 되는 유도리. 한국 유도리 너무 좋아.      


“로항이 짐 검사 하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아. 중간에 끼어 있어.”

“먼저 들어가 있어! 왜 거기 있어?”

“모르겠어. 은성 없이는 갈 수 없다고. 우리 말을 안 들으셔. 하하.”

“들어가서 앉아 있어!”

“우리는 그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 돌이 되었어. 하하하하하.”      


카톡카톡카톡. 직원은 탑승이 임박한 승객은 짐 검사를 생략해 주었다. 아무 게이트로 들어가 마구 달려서 도착하고 보니,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이었다. 졸지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이 되어 버렸다. 뒤늦게 들어온 로항을 보니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고, 아부지, 저 아무 일 없어요. 늦는다고 못 타는 거 아닌데, 그냥 들어가면 되는데. 여기 우리 나라인데. 유도리 좀 부리면 되는데. 한번만 봐 달라 하면 되는 나라인데. 여행이 좋아졌다. 아, 나의 시골 아부지.           


어릴 가족여행을 때면  오줌이 마려운 기분이 됐다. 안절부절과 전전긍긍의 콜라보레이션. 집밥을 고수하는 아버지와 할머니 비위를 맞추려, 엄마는 여행 전날마다 날밤을 새웠다. 진미채와 김부각, 뱅어포와 나물무침. 어린이들에게 재미없는 밑반찬을 가지쯤 해서 도시락을 쌌다. 휴게소 우동이나 소세지를 코카콜라와 먹고 싶었지만, 집에서 먹던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덥거나 추우면 누군가 짜증을 냈다. 한국의 계절이 그럴 뿐인데, 날씨가 탓인 같았다. 누가 곳을 골랐냐고 짜증을 내거나 길이 막히거나 '빨리 집에나 가자'고 재촉하는 아버지를 보면 모든 탓인 같았다. "내가 눈치 없이 소풍을 오고 싶어해서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야...내가 또 눈치없이." 비합리적이지만. 어린이의 마음 속이란 그러했다.




어른이 되고 간 첫번째 가족 여행이었다. 게다가 외국인들과 함께라니. 여행 전날에는 생리증후군의 10배 정도의 불안이 엄습했다. 누구 한 명은 짜증을 낼 것만 같아 마음이 쫄보가 되었다. 버스가 30분이나 안 온다. 이번에도 아니야 짜증? 길을 못 찾겠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아니야? 아니었다. 계속 아니었다. 버스가 안 오면 누군가 캔맥주를 사오고 마시다 '앗!' 하고는 마구 뛰어서 화장실에 가고 다시 뛰어서 마침 온 버스에 몸을 날려 타고서, 마구 웃었다. 


'덥다 춥다 차가 왜 안 오나 차가 밀리나 자리가 없어서 짜증나네 시끄럽네'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그 정도 프랑스어는 알아듣는다) 함께 걷는 일이 가족 여행 목적인 듯 했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걷는 것. 걸으니까 좋았다. 바람도 잘 느껴지고 바닷물결의 곡선을 아주 자세히 보았다. 



산방산에 갔다. 불뚝배가 나오거나 염소 수염이 얌실하게 그려진 각각의 부처상들은 몹시 웃기고 귀여웠다. 용암이 뭉쳐 만들어졌다는 산방산에는 그럴듯한 전설도 있었다.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궁둥이에 맞은 옥황상제가 분노해 한라산의 봉우리를 따서 멀리 던져서 이곳에 떨어졌다나? 무언가의 꼭다리가 똑 떨어져 앉은 것처럼 생긴 산방산은 이름조차 귀여웠다. 산.방.산.방.산.방.산.방.산.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 동굴 안에 앉은 부처를 보러갔다. 


서울을 떠났고 봄바람이 온화하고 할 일도 없으니 묵묵히 계단을 오를 수 밖에. 굴 속의 약수를 마시러 올라갔다 얼결에 기도를 하는 척 하다가 사탕 바구니를 보고 “불교 신자만 먹을 수 있어? 먹고 싶다.” 말하는 가족의 바보 같음에 괜히 열 배 정도 크게 웃는 것이다. "그럼. 당연하지?" "하하하하하. 나는 바보 아닙니다. 당신은 바보입니까?" 


계단을 오르면 엔돌핀이 돌고 그러면 시시한 것들에도 배를 잡게 된다. 행복, 하다고 말해도 될까. 그래도 되겠지. 가족 여행이 행복한 건 처음이어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났다. 에이씨, 짜증나게. 주책이야. 이따 집에 가서 울자. 평화로웠는데, 정말.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내 귀에 꽂히는 한국어만 없었더라면.


“바다 밖에 볼 게 없는데 뭘 자꾸 보래.”

계단을 내려오며 그 아저씨는 화를 냈다. 아내로 보이는 분은 체념한 표정이었다. 아, 전생에서도 들은 것 같은 저 소리. 가족을 위해 이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나를 달래라는 저 요구. 섬에 놀러와서는 왜 바다밖에 볼 게 없냐고 불평하는 저 얼굴. 아, 나의 아버지 같고 나의 남동생 같은 저 표정. 


아버지는 어린이날 행사로 나와 남동생이 좋아하는 돼지갈비집에 가서는, 중국집에 전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간짜장 하나 가져다 주세요. 00갈비 아시죠?" 아버지는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짜장면의 빅 팬이었다. 아, 물론 갈비집 사장에게 곤란한 부탁을 해야 하는 건 엄마 몫이었다. 철가방 아저씨가 간짜장 하나를 가져다 주었고 예나 지금이나 창피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상다리 밑에 들어가 자고 싶어졌다. 창피하면 자꾸만 잠이 왔다. 짜장면을 다 먹고 나면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가자.” 


살점이 붙은 갈빗대가 열 점은 남아있었지만 그는 담배를 태우러 나가 버렸다. 주문한 냉면이 지금 나왔는데. 아버지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엄마는 익숙한 체념의 표정으로 묵묵히 갈비들을 비닐봉다리에 싸고 밥값을 치렀다. "집에 가서 먹으면 돼. 괜찮아."


아니야, 아무 것도 괜찮지 않다. 아버지, 그런 건 괜찮지 않아요. 

그때도 지금도,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여전히 나는 사과를 받고 싶다. 


내가 받은 가정교육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고로 나는 화가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 남들 하는대로, 관습대로 가족을 꾸렸지만 가족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을 보면 성난 부처가 된다. 용머리 해안에 그 남자를 매달아 놓고 떠나고 싶어진다. 자, 평생 바다를 봐. 바다 물결을 보라고. 이게 네가 치를 벌이야. 



최고의 순대를 먹으러 갔다. 제주 돼지를 사용해 새벽 6시부터 손수 만드는 피순대. 네 명이 먹어도 배부른 피순대와 머릿고기 한 접시에 만이천원밖에 안하는 말도 안 되는 가격. 

“‘인생 순대’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대.” 

“그런 대회가 있어?” 


비공식 코리아 대사이자 제주여행 가이드인 나는 한국대표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그럼, 우리나라에 순대 콘테스트가 얼마나 많은대. 전국 각지 순대명인이 모인다? 그런데 저 할머니 사장님이 일등 한 거야. 얼굴이 그래 보이지? 빛나지?


시장 한복판 순대국집에 들어서자 당연하게도 맨발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사랑스러운 듯 만지작거리는 아저씨가 있었다. 나는 재빨리 차가운 막걸리를 두 사발 들이켰다. 취해야 해, 취해야 눈이 흐릿해진다...


아저씨는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주물렀다. 그 손으로 순대도 집어먹고 깍두기도 집어먹고 막걸리도 휘휘 젓고, 아이 참 행복하구나. 마침 도미니크가 그 아저씨 발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술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우렁차지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그녀는 자꾸 미끄러지는 스탠 젓가락을 꼭 쥐고 연신 말했다. 프랑스 소시지보다 훨씬 맛있네. 정말 맛이 좋다. 한국 요리는 다 맛있어. 나는 아저씨를 쏘아보았지만, 역시나 눈치 채지는 못했다. 놀라워라, 저 둔감력.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무리를 참 좋아한다. 특히나 취한 아저씨나 마음이 좀 아프신 분들. 그들은 외국인들, 그 중에서도 백인 선호가 강하신 듯 하다. 하긴, 외국인을 좋아하는 건 그분들 뿐 아니다. 제주 할매들도 카페 주인들도 서양인을 보면 너무 좋아들한다. 


시엄마 시아빠야? 어디 살어? 아니, 시엄마 시아빠 말고 아가씨 어디 사냐고. 서울? 그럼 넷이 다 서울 살어? 이거 하나 더 먹어. 애기는? 애기도 백인이여? 애기는 왜 없어, 애기 있어야지. 아가씨는 한국인이야? 중국인이야? 한국말 잘하네. 요즘엔 한국말 잘하는 중국인도 많대.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순대를 먹고나와 버스를 타러가는데 '도른자' 하나가 계속 따라왔다.

어디 가? 나도 같이 가. 나 외로워. 나 친구가 없어. 나라에서 돈 받아서 속상해, 그냥 죽어야지. 그냥 뒤져 버려야지, 그런데 할머니가 육지것들 다 죽여 버리라 그랬어. 육지 것들.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야. 문재인 개새끼. 트럼프 알아? 트럼프도 개새끼야. 내 인생 좆된 거 다 트럼프 때문이야. 


네 명에게 번갈아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족히 100미터를 쫒아왔다. B의 가족은 수풀의 토끼 같은 사람들이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고 다같이 빠르게 걸을 뿐이었다. B가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가. 이제 집에 가.”라고 말했지만, 그의 한국어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착하고 여릿한 한국어 발음에 도른자는 한층 더 매력을 느낀 것 같았다. 


누나, 누나, 나 친구 없어 외로워, 누나, 누나. 


아, 나는 누나란 소리를 정말 안 좋아한다. 도른자는 내 나이 정도로 보였다. 얼굴엔 대일밴드를 열 개쯤 붙이고 있었다. 어디서 누나 소리 하다가 쳐 맞았겠지. 


가이드야? 가이드? 가이드지? 


“가세요.”

드디어 내가 입을 열자 도른자는 신이 나 미쳐 날뛰었다. 

왜, 가기 싫어. 나 있으면 안돼? 같이 가. 


겁을 줘도 가지 않자 112에 전화를 했다. 도른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상한 남자가 100미터 넘게 따라오네요."

"뭐라고 하나요?"

"몰라요. 문재인 욕을 하네요."


딱히.....욕을 하거나 때린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말했는데. 말하고 보니 좀 이상했다. 대통령 광신도로 보일 만한 발언이었다. "아, 트럼프 욕도 했어요." 아...점입가경이다. 더 이상하다.


경찰을 부르면 부리나케 도망갈 거라 상상했는데 자존심이 상했는지 일 분 정도 더 버티다가 경보걸음으로 도망을 갔다. 이제 정말 괜찮다고 했는데 경찰이 와서 안전한지 확인하고 갔다. 고맙고 곤란했다. 


벌렁대던 심장은 다음날에야 조용해졌다. 


그날 밤엔 어쩐지 침울해져서 뜨거운 차를 몇 잔이나 마시고야 잠이 들었다. 도른자가 공격적인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B는 ‘외롭다고 친구 필요하다고 했어’라는 말을 듣더니, “슬퍼.”라며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미친 놈은 슬프게 미친 놈이어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다. 그날밤 어디서 까불다 또 맞았겠지. 신기한 사람만 보면 쫒아가 친구 하자고 하다가 한 대, 문재인 욕하다가 한 대. 얼굴의 밴드가 늘어가려나. 순대국 아저씨랑 친구나 먹고 막걸리나 쳐 마시고 조용히 잠이나 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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