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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r 30. 2019

할머니, 혹여 환생하시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세요

조롱과 비판을 좋아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그녀를 내가 닮았다

여성을 성녀와 마녀로 나누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친할머니는 기꺼이 그 분류에 끼워넣고 싶다. 그녀는 망원동, 아니 마포구 제일의 마녀였다. 할머니는 두꺼비를 닮았다. 흉측한 외모와 교활한 성격.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근희’라는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운 이름이라고 말했지만 호적상 ‘남석’이었다. 어린 내 생각에도 창씨개명 때 억울하게 바뀌었다는 후자의 이름이 훨씬 어울렸다.


나와 동생이 배달 야쿠르트를 먹지 못하게 된 것도 할머니 때문이었다. 아기 남동생은 돌 무렵에는 콧대가 없이 콧구멍만 있어서 아기 두꺼비 개구리 같았다. “손자가 할머니를 닮았네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친교 삼아 이 한 마디를 했다가 빗자루로 얻어맞을 뻔 하고는 다시는 우리 집 근처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외모 콤플렉스가 깊었다. 예쁘지 않을 바엔 미소도 짓지 않겠다는 기세로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당시의 조혼 풍습과는 달리 꽤 늦은 나이에 친할아버지의 ‘재취’ 자리로 결혼을 했고, 친할아버지의 사랑을 몹시 원했으나 결국 성취하지 못했음을 암암리에 모두 알고 있었다.


배다른 딸인 ‘영등포 고모’는 장례식장에서 서글프게 울었다. “어머니가 부지깽이로 내 머리에 구멍을 두 개나 냈어도 피가 철철 났어도 내가 어머니에게 더 잘했어야 했는데.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어머니.” 고모의 오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는 알게 됐다.

연탄 옮기는 부지깽이로 훈육을 한 새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고모를 일으켜 세워 안아주고 싶다는 사실을.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수용과 저항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겐 후자가 우선한다는 것을. 고모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마음을.


이십대 시절, 내가 할머니에 대한 공포를 처리한 방식은 유머였다. 마음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찌르는 무서움을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과장 섞인 각색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전파하면 공포는 잠잠해졌다. 나는 ‘떠벌거림’으로 홀로 우는 아이를 보호했다. 이건 웃긴 이야기야, 슬픔이 아니야, 울지 마라, 아이야.


고유의 내러티브를 지니고서 청중에게 전해져 ‘비밀스러운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고 비로소 청중의 반응까지 입혀진, 이야기. 이야기는 구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일삼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와 그 사람들 사이에는 얇은 선 하나밖에 없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나 망상장애 환자와 작가 사이가 얼마나 멀까. 정상과 비정상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감정은 내 마음의 구석에서 떨어져 빛을 보았다. 수다의 테이블 위에 놓였다.

보세요, 이게 내 고통이에요.

감정은 분리되어 잠시나마 하나의 객체가 되었다. 평생 이 번거로운 고통을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하겠지만. 한번도 완벽히 평온해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고통이 내 주머니 안에 있지, 내 심장에 달라 붙어있지는 않다. 5cm만 달라져도 인생은 살만해졌다. 숨은 쉬어졌다.  


할머니의 캐릭터 구축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유서 대신 남은 세 권의 며느리 치부책’ 기회만 생기면 나는 “할머니의 위대한 유산이라면, 며느리의 잘못을 지어내 적은 세 권의 대학노트다”고 떠벌댔다. 한 권이든 세 권이든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장은 코미디의 주요 기술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정직하게 100%의 사실만 말하고 쓰려면 진술서를 작성하시라. 논픽션이라도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은 글 전체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이상, 최대한 지어내 삽입해야 한다. 이야기의 완결을 위하여.


목소리의 톤과 제스처의 적절함, 이야기의 길이가 적당했던지 좌중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할머니도 이야기꾼이었네. 네가 그 재능을 물려받았나봐.” 누군가 농담을 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세 권은 무슨. 한 권의 3분의 1 쓰다 꼴까닥하셨지. 글쓰기가 좀 어렵니?”

며느리가 상한 음식을 주었다거나, 환자인 자신을 벽으로 밀쳤다거나 하는 거짓말을 모두 읽고서도 그녀는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대신 할머니를 연민했다. “그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야.”


최근에 나는 그 유머를 그만 두었다. 발화자 입장에서,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아서다. 코미디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오랜 패턴을 깨닫고 나자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 기분 나쁘지만, 진실이다.  엄마는 나의 유년기 내내 내가 양친의 평균보다 큰 키에 비해 키가 작은 사실에 대해 “할머니를 닮았나...”라고 의문스러워 했다. 너무 듣기 싫어서 못 들은 척 하거나 화를 냈다.


유전자란 공포스럽다. 나는 할머니의 작은 키는 물론 스토리텔러로서의 기술, 공격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얼마 전 ‘현명하고 우아한 여자와 시끄럽고 공격적인 여자,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나는 후자를 택했다. 공격적이고 분노를 날 것으로 표출하고 빈정거리고 조롱할 때. 무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때, 윽박질러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 만족스럽다.


할머니는 그 좋은 머리와 공격적 성향으로 친일파가 되어 악명을 날리든 독립운동의 기수가 되든 양자택일을 했어야 했다. 못 생겼다고 어릴 적부터 당한 가스라이팅의 영향으로 분노를 품었지만, 분노를 예술이나 저항활동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가부장제 안에서 며느리에게 쏟아부었다. 그녀도 시스템의 피해자다.




할머니의 유산은 또 있다. 지성에 대한 위협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거울상 같은 손녀가 아주 미웠을 것이다. 똑똑한 손녀가 자기 편이 아니라서 곤란했을지 모른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고 허술한 면이 많아서 스스로도 늘 오해하지만 나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에게 늘 경고한 사실은 ‘똑똑함을 자랑스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똑똑 떨지 말라”고 했다. 똑똑 떨지 말고 겸손해라, 그렇게 네가 똑똑하면 내 남동생을 과외로 가르쳐라, 너 혼자 똑똑하면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다, (5학년이었던 나는 할머니의 예쁨을 받고 싶어서 종종 남동생을 앉히고 국어를 가르치려 애썼다. 동생은 밥상에 엎드려 코를 고는 흉내를 냈다)


네가 똑똑해? 얼마나 똑똑한지 보자. 어디서 헛발질 하나 지켜보겠다. 지성을 가진 여성은 협박을 받는다. 나는 이십대 내내 겸양을 가장했다. 누군가(특히 남성이) 틀린 것을 가지고 길게 지론을 펼치면 어쩔 줄을 몰랐다. 지적이나 반론을 펼치고 싶지만 그러면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한번은 누가 내 장점을 뒤에서 칭찬했다고 전해들은 적이 있다. “스마트한 사람인데 그 사실을 티내지 않는 현명함이 돋보인다.” 내 처신이 몹시 성공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똑똑함이 새어나오려 하면 위험한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의 기원을 알지 못했다. 틀리면 어쩌나, 다른 사람을 상처 주면 어쩌나, 드센 여자로 보이면 어쩌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똑똑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는데 혹시 아닌 순간이 생기면 어떡해?”



지성을 위협하기. 이 오랜 훈육을 깨닫게 되자 내 인생은 다른 이야기의 옷을 입었다.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 키가 작고 예쁘지 않고 머리가 좋은 여자아이. 할머니가 2019년의 여성이었다면, 그녀는 어디로 헤엄을 쳤을까. 할머니는 세상 모든 사람을 모두 조롱했다. 그 고도의 비판력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어쩌면 학자가 되었을지도 적어도 트위터 셀러브리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환생이란 것이 있다면, 할머니가 다음생에는 냉소가 가득한 유머를 구사하는 영국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 되어서 자신의 넷플릭스 에피소드를 가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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