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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r 19. 2019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 쓰기란 그리 쉽지 않아."

Why I write: 내가 쓰고 내가 우는 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 쓰기란 그리 쉽지 않아." 

옷소매로 눈가를 꾹꾹 눌러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떤 감정은 무의식 중에 들이닥쳐 발딛고 선 세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어지러워서 좋을 게 뭐람.  어떤 문장은 타투처럼 마음에 평생 새겨진다. 젠장, 이 문장과 평생 살아가게 생겼잖아. 


패티 스미스의 <M Train>의 첫 문장. 

“ It's not so easy writing about nothing." 위로 받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뉴욕의 헌책방 구석이었다. 마침 날이 심각하게 화창한 대낮이어서 울음이 부끄러웠으나, 마침 뉴욕이라 멋쟁이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고 있던 문장이었다. 이미 한국어로 여러 번 읽은 문장이었으나, 작가가 자신의 언어로 쓴 문장을 새로 읽으니 새로웠다. 작년에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었다. 여름내 집필 중인 책의 주제를 B가 열 번은 물었지만 나는 중언부언했다.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요약하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B는 서점으로 갔다. “그러니까, 은성씨의 세계가 이 책과 비슷한 세계에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응,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 쓰는 사람이야. 철학도 심리학도 문학도, 모두 아니야. 그냥 나에 대해 쓰고 있어. 그래서, nothing.   

 

작가가 될 수 없다고 포기하면서 이렇게 웃었다. “개나 소나 책 내는데 나까지 뭐 하러...” 여러 매체에 기사를 기고하며 먹고 살았으나 이렇다 할 전공이 없으니 굳이 책으로 묶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겼다. 게다가 나는 (글쓰기 강사라는 직업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글로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지독한 회의형 인간이다. '나나 잘하자' 형 인간이다. 적어도 글로 교훈이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잡지 마감 뒷풀이 때마다 중얼거렸다. “나는 왜 덕후가 아닐까. 술이든 힙합이든 영화든 하나만 깊게 팠으면 좋았을걸.” 그렇다고 특정 주제를 주면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잘 쓸 수는 있지만 글쓰기 작업은 유희가 아니게 된다. 고독하고 고통스럽다. 어깨가 굳어버린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내 글쓰기 주제라는 것을. 그리고 첫 책을 완성하는 내내 그 점이 곤란했다. 한 줄의 통찰로 요약되는 명확하고 설득적인 책들이 잘 팔리는 세계 속에서 많은 에세이 작가들이 매일 이런 자문을 하리라 짐작한다. “이 이야기를 도대체 왜 써야 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고? 누가 궁금해 한다고?”      


패티 스미스가 살아온 날들을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흐름으로 서술한 책이 <M Train>이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거나 친구와 해변을 걷는 동안을 묘사한 문장들는 어떤 삶의 교훈이나 지혜가 없다. 상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기록들을 읽으며 이런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 글이 되어도 좋다는 동의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로 첫 에세이집을 내면서 나의 전공을 깨달았다. 후회와 반성과 어정쩡함과 미련이 내 글감이라는 것을. 쓰는 동안 제대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이라 좋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자랑스러웠다. 예민한 사람이라 다행스러웠다. 나의 불안이 고마웠다. 요즘은 멍하니 있다가 농담을 한다. “생각이 내 직업이야. 지금 일하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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