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할 말이 없는 기분을 노래로 만들자
첫 에세이집을 낸 뒤 한동안 의기소침했다. 기쁨이긴 한데 이상했다. 털이 풍성한 고양이가 내 몸에 등을 붙이고 누운 기분이었다. 언제 떠날까 불안했다. 슬픔이라 부르기엔 은근하게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를 한참 내려다 보았다. 앤이라고 부르기엔 화려한데 코델리아라고 부르기엔 못생겼구나.
크레이지 에고 서칭
물론 나는 근면한 사람이다. 책 제목과 내 필명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했다. 가끔은 손가락 지문이 쓰라렸다. 동거인이 침실 불을 끄면 이불 안으로 스마트폰 불빛을 감추고 보았다. 일종의 ‘에고 서칭’. 에고 서칭의 복잡함이란, 박수 갈채와 음료수 캔 던지기, 가끔은 취객의 술 뿌리기 등을 골고루 맞는 스탠드업 코미디 같다는 거였다. 칭찬을 들어도 기분이 조용했다. 오만한 나르시스트 같으니.
악평을 찾아내려 샅샅이 뒤졌다. 드디어 겟 잇! ‘하루만에 다 읽었다.(칭찬 아냐?) 그런데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어떤 사람들은 내가 아닌 타인, 처음 본 낯선 것을 '모야 어려워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님 너무 급하게 달려나가신 듯. 다음 책은 천천히 쓰시길(어디서 훈계야!)’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는다는 다독가의 인스타그램이었다. (하루에 책 한권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대체 왜 그런 희한한 욕망을 품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한번은 책 더미, 한번은 증명사진 풍의 셀피를 올리는 남자였다. 나는 작가다운 단정한 해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구글링하려다가, 졸려서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마이갓, 가슴이 아팠다. 그러게, 누가 무대에 오르래? 의기소침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 책은 첫 아이라는 상투적 표현은,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것이란 점을 알았다. 넘쳐나는 사랑만큼 떨리는 공포와(내가 아이를 죽이고 말 거야!) 어설픔도 커서 양육에 실패한다. 도무지 거리 조정이 안 된다. 내가 너야, 나는 너다. 어머, 너 퉁명스럽게 입 내미는 버릇 그거 안 고쳐? 어디서 많이 본 버릇인데. 맙소사, 나잖아! 너는 나다. 너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나의 책은 지난 연애와 지금의 사랑, 가족의 슬픈 역사, 나의 괴상한 점을 우루루 쏟아놓은 것이었다. 한반도의 장녀로 나고 자라 착실히 쌓아온 분열을 드러냈을 때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끄기의 기술’을 글쓰기에 적용했다는 점이 작은 발명 같았다. 야, 나도 한번쯤 자유로워보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내적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의 기분 알아요? 마음에 붙은 모든 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상쾌한 흥겨움. 이윽고 조명과 음악이 꺼지고, 녹화된 내 춤이 유튜브에 퍼블리싱되어 온 세계에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알려지는 것이야 기쁜 일이지만 이 수치심을 어쩔 것이지?
독자들은 눈이 밝았다. “제목은 서정적인데, 작가님은 나처럼 공격적인 여자다”라는 리뷰를 봤다고 상담사 선생님에게 말하자 그녀는 상쾌하게 웃었다. “와, 정확한데요. 다 읽어내네요?”
그건 괜찮았다. 독자는 에세이를 창작물로 읽기도 하지만 저자의 삶으로도 받아들인다는 점을 알았다. 소설이나 희곡처럼, 자신의 내면을 바탕으로 하되 한 겹의 막을 씌울 수가 없다는 점은 에세이의 태생적 운명이다. 자기 고백적 에세이를 쓰면, ‘글쓴이의 삶에 대한 조언’ 형태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힘내세요. 밝은 미래가 펼쳐지길’이라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이 작가님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좀 힘들 것 같은데, 글은 재밌었다’라는 리뷰에는 또 댓글을 달 뻔 했다. “지금은 많이 고쳤어요...”
가족 갈등은 ‘네이트 판’에 올라온 에피소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콩가루 집안인 듯.” 고맙지만, ‘그 에피소드는 10년 전 일인데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여보세요. 이건 예술이라고요. 사랑과 전쟁이 아니라.”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만 가지 이유들
“여자들에게 자기고백적 서사를 쓰라고 재촉하곤 했는데. 이제 주춤하게 돼. 왜 자신의 마음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지 잘 알겠어서.” 친구에게 말했다. 나에게 이름표가 붙는 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다. 한국 장녀라거나 백인과 결혼한 여자, 농부의 아내.
오로지 내 노력에 의한 자발적 선택만 이름표로 반갑다. 마포구민이라거나, 요가원 수강생, 여성의 글쓰기 강사라는 이름표는 자주 만지작거린다. 좋아한다. 이런 사람이, 지난 시간의 후회와 고통을 쓰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여름날 차가운 생맥주를 한번에 들이킬 때처럼 시원하고 후련하고 짜릿하다. 공감받고 이해받고 치유받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책을 낸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솔직한 자기 서사를 쓴다는 것, 창작물 안에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복잡다양한 면을 바라보고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해 돋보기를 댄다. 그리고 독자는 작가가 돋보기를 들이댄 부분을 작가라고 여긴다. 그것이 전부라고 각인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글쓰기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래서요?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요. 120세까지 살 건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평생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늘의 작은 용기를 내 본다.
두려움을 안고 걸어갈 뿐이다. 이런 다짐을 하면서.
납작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말을 두려워 하지 말 것.
그들이 헛소리를 많이 하면 귀를 막을 것,
내 목소리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걸어갈 것.
복잡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고 그려서,
나의 방을 가득 채울 것.
나의 방을, 나답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우면
세상은 두렵지 않다.
걸어가자.
이 글은 한참 전에 써 둔 메모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긴 글을 안 쓴 것이지? 고작 몇 달인데, 한 생이 지난 것 같다.
할 말이 이제 없다고 투덜대면서 매일 트위터에 불만과 희망을 고루 적어댔다.
강의를 하면서는, 잘쓴글에 대한 강박을 많이 내려놓았다.
학생들에게 전한 말들,
그들이 내게 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에너지 부스터가 되었다.
그들의 글(이라고 쓰고 삶이라고 부르는)에 대한 고민이 나에게 치유가 되었다.
아, 아
고마워라.
이제 또 슬그머니 써 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