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은성 Jun 25. 2019

상대의 아픔을 안아주려면
마음 속에 안마당이 필요하다

딸과 엄마 사이, 세뼘만큼의 거리

북적이던 병원 대기실에는 재희와 어머니, 아직 볼일이 남아있는 몇 명의 환자들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같은 날, 다른 병원에서 용종 시술을 마친 아버지와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저번주에 유연이 결혼식을 갔는데, 정말 너무 예쁘더라. 어찌나 이쁘던지. 돌아가신 큰 외삼촌 생각이 나서, 나랑 니 이모는 울었지 뭐야.” 


어머니는 지난 주 다녀온 친정 조카 결혼식에 대해서, 한 시간 전부터 같은 장면과 그 지점에서 느낀 자신의 감동, 돌아가신 외삼촌에 대한 생각 등을 반복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근 손주를 임신한 새 언니와 오빠에 관한, 재희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 대해, 묻지도 않은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른쪽 귀로 흘러 들어와, 왼쪽 귀로 새어 나가는 공기 보다 가벼운 어머니의 말들을 들으며, 재희는 생각한다. 

‘엄마, 나는 어떤지 안 궁금해?’


아주 오래 전부터 가슴 속 깊숙이 묵혀두었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싶지만 다시 삼킨다. 

“너희 오빠한테 반찬을 보내줬는데, 느히 오빠가 뭐라고 했는줄 아니?”

“응 뭐라는데”

재희의 시큰둥한 반응을,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두 눈을, 휴대폰에 붙박힌 고개를 보며, 어머니는 ‘대화 용량 초과’를 전달하는 딸의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읽었을까.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과 있었던 일과들을 점점 입 안으로 주워담았다. 괜히 머쓱해진 어머니는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3개의 좌석이 붙어 있는 의자에서 딸과 가장 먼 곳에 앉는다. 재희는 그런 어머니를 애써 의식하지 않은 척 한다.

‘에라이, 못된 년.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한테 이렇게 하면 안되지. 넌 참 못된 딸이다.’ 


동시에 마음 속에서 이상적인 ‘딸’의 모습을 가장하라는 압박이 재희의 마음에 죄책감을 일으킨다. 재희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지독히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이고, 한없이 자기 중심적인 ‘짝사랑’ 상대자였다. 

재희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충만해져, 소원한 거리를 줄이려고 다가가려는 제스처를 보이면, 어머니는 특유의 무뚝뚝함, 시니컬함으로 딸의 메시지를 모른 척 회피했다. 반대로 어머니가 딸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려고 다가갈 때, 재희는 선을 긋거나 외면했다.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마음은 지난 세월동안 모녀 사이에 퇴적물처럼 쌓여갔다.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진걸까? 어느날 재희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재희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너에게 지금 어떤 일이 생긴거니? 누가 그랬니? 너는 괜찮은거니?’대신 어린 딸이 겪었을 진창을 마주하고, “지금 뭐하는 거야! 아무한테도 말하지마.”라고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사람처럼 눈 감아버렸다. 


어머니가 나가고 정적만 남은 방 안, 과거의 그 공간에 덩그러니 앉아 자기의 몸을 ‘더럽다’는 색안경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어린 재희는 아직까지 그 곳에 홀로 남겨졌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의 이야기가 몸에 흡수되지 못하고, 겉으로 빙빙 도는 듯한 이질감은 서른이 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재희가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은 심리상담을 통해서였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과거의 어머니도 겨우 서른이었는 사실이었다. 재희가 그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상대의 아픔을 알아채고 안아주려면 자신의 마음 속에 안마당 같은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는 것. 


어머니가 자란 환경은 그녀가 안정감을 느끼고 마음 속 마당을 가꾸어줄 토양이 되어주지 못했다. 대를 이은 가난은 먹고 사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로 어머니에게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주지 못했고, 부모도 그녀에게 안전한 성 같은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어머니는 어렴풋이 딸에게 일어난 일을 짐작했지만,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을 거라고 짐작했다. 재희와 어머니 사이의 세 뼘 남짓한 빈 좌석 하나는, 정사각형의 크기 이상으로, 몇 십억광년 떨어진 우주 속 행성들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그래, 나와 엄마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해. 딱 이 빈 자리 하나 만큼의 거리가 좋겠어.’ 


재희는 빈 의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살갑게 웃으며, 한 칸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빈 의자 하나 만큼의 거리는 재희가 앞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가족과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녀를 스쳐간 온갖 상해 속에서, 가족들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일곱살 여자 아이에게 일어난 가장 무섭고 잔인했던 폭력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오빠는 간접적인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다. 그녀를 피흘리고 무방비하게 스러지게 한 기억에서 본인의 잘못이 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녀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준 것은, 그녀 자신과 책 속 인물들, 친구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자신과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가장 친밀하지만, 더 상처 주기 쉬운 가족과의 관계에서 나를 지킬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어머니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거리를 둔 거겠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이, 오빠와 아버지가 도착했다. 하얀 포터가 아산병원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차에 타고, 시골을 향해 멀어져갔다. 차 안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세 사람을 보며, 재희는 울컥 가슴이 아렸다. 자기가 그들을 원망하면서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건, 그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겠지. 재희는 한동안 한강이 내다보이는 병원 근처 산책로를 멍하니 걷기만 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밤종이

<작가소개> 낮에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며 보고서를 쓰고, 밤에는 종이에 제 이야기를 끄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리컵 빼러 온 건 제가 처음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