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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5. 2019

모두가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출근은 설레는 여행이 되겠지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퇴근하셨나요.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퇴근하는 밤. 잠시 오늘은 무엇을 했나 되돌아본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럼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해 본다. 들을 필요도 없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할 필요도 없었던 형식적인 회의가 생각난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했던 상사 욕도 생각난다. 지금은 내 옆에 함께 분노할 동료가 없으니 그 틈을 타 다른 내일을 상상해 본다. 나의 상상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매일 다른 옷을 입어도 좋고 같은 옷을 입어도 좋다. 아침마다 사람들은 따뜻한 미소로 인사한다.     

- 오늘 입은 옷도 잘 어울리네! 아름다운 아침이야. 

- 맞아요. 오늘 하늘이 참 아름답지요. 출근길에 산책하는 강아지도 봤어요.     


강아지 키우시는 분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볼래요? 아름다움을 전하는 인사를 하는 마음에 쑥스러운 것도 없고 억지스러운 것도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하는 법을 안다. 나는 A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A에게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내리면서 사진을 구경한다. 우리는 여전히 너무 먼 거리를 출근하고 있지만 그 출근이 고통스럽지 않다.      


우리의 출근은 때때로 여행이다. 우리는 출근을 하면서 각자 사랑하는 것들을 발견한다. 발견한 것들은 영감이 되고 그대로 우리의 일이 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사랑하는 것을 꼼꼼히 보면서 여러 번 곱씹는다. 봄에는 연두색으로 빛나는 새싹들이 나의 마음에 들어온다. 여름에는 거리가 달구어지기 전의 고요함을 즐긴다. 가을에는 비를 맞아 떨어진 단풍들이 길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겨울에는 여름 내내 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나뭇가지들이 얼마나 길어졌고 얼마나 뻗어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봄이다.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고 쏟아지는 봄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외선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미세먼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몸에 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사업이 되고 일이 된다. 우리의 일은 음료의 맛만큼이나 톡톡 튀고 적당하며 싱그럽고 고소하다. 나보다 월급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나보다 윗사람에게 예쁨 받는 사람이 있어서,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있어서 화가 나지 않는다. 일은 삶의 전부이면서도 삶의 전부가 아니다. 


특별히 일을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일을 못 할 때도 있지만 잘할 때도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경쟁사회라는 단어도 자주 썼고 선발 같은 단어도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모두 잠들어 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그 바람에 힘을 얻기도 하고 주저할 때 떠밀리기도 한다.      

열린 창문으로 부는 따뜻한 바람에 날아가는 것은 없다. 이 사무실에는 종이가 쌓여있지 않기에. 우리의 업무는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내 책상에는 화분이 몇 개 있어서, 일을 하다가 커피를 마시듯 꽃 냄새를 맡는다. 옆 자리에 앉는 B는 '나는 꽃 싫어하는데. 꽃은 시들잖아.'같은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B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9시부터 6시까지 마음껏 사랑하고 퇴근을 한다. 퇴근하면서 이야기한다. 너무 아쉽다. 오늘도 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네. 내일 또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사랑을 하기에 하루 8시간은 좀 부족한 시간이다. 결국 퇴근하고 나서도 일은 계속 되고 자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누운 자리에서도 사랑을 한다.            




    


작가소개

모찌

쓰는 일을 포기했다가 다시 쓰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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