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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8. 2019

젖꼭지의 표준편차

고도근시자의 사람구별법 

사람의 몸은 다 다르게 생겼다. 어느 정도냐면 나는 젖꼭지로 사람을 구별했다. 두 달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시력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에게는 사람 구별법이 생겼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으로 사람을 구별했지만 샤워장에선 젖꼭지로 사람을 구별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이가 없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도수 없는 수경을 쓰면 늘 시야가 뿌옇다. 가까스로 얼굴은 식별했지만, 시선과 표정은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같은 반 사람을 마주치면 눈인사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리고 다녔는데, 그렇다고 젖꼭지라니. 한달쯤 다니니 눈에 익은 젖꼭지들이 생겼고 내심 반가웠다. 그걸 왜 몰랐을까. 몸은 얼굴만큼이나 다 다르게 생겼다.  


엄마는 자신의 뚱뚱한 딸이 수영장에 다니기로 한 것을 걱정했다.

 “네가 거기에서 젤 뚱뚱한거 아냐?” 

“물에 뜨긴 하니?” 

질문들 속에서 본인이 대신 내 몸을 창피해하고 있었다. 평상시 별 생각 없었더라도 그런 얘기를 자꾸 들으면 어쩔 수 없다. 수영장에 가서 나보다 더 뚱뚱한 사람이 있는지 훑었다. 몸집이 더 큰 사람이 있었다. 그럼 끝인가?

 

수영장은 탈의실 입구가 ㄷ자로 꺾여있다. 보통 중문은 열려 있고 커튼 마저 잘 닫혀있진 않지만, ㄷ자형 입구 때문에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입구 근처 사물함을 배정받으면 밖에 있는 사람이 볼까봐 신경 쓰였는데 어느 각도로 봐도 밖에선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자 아무렇지 않아졌다.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그다음 센터 안으로 들어와 바코드를 찍고 사물함번호표를 받아 탈의실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사물함에 가서 옷을 벗고 나체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닫힌 문은 없다. 그리고 또다시 피부에 색칠만 한거나 다름없는 차림새로 공공장소에 나간다.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진 곳에서 옷을 입은 모습과 나체의 몸은 구분이 사라진 것 같았다.

 

목욕탕에 다니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몸은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매일 본다. 20대부터 80대까지 알몸을 매일 마주친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젖꼭지의 모양 편차가 커서 놀랐는데 이제는 익숙함에 낮은 시력을 더하여 몸의 생김새 차이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강한 자극을 계속 받으면 역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이 감각은 이어져서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몸도 희미해졌다. 한번 더 말하면 외모에 대해서 둔감해진다. 특히 내 몸에 대해서 둔감해진다. 몸 모양에 대한 생각이 안 든다. 


사람의 몸은 다 다르게 생겼다. 그게 다다. 


김민혜/구경쟁이. 소글워크숍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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