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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24. 2019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걷는 일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다니!" 

발등에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퍽, 하는 소리도 났던 것 같다. 누워있던 나에겐 내 발등이 보이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지르는 소리로 무엇이 흐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피!”  


누웠다가 다리를 좀 힘차게 뻗었을 뿐인데, 베란다 유리창이 깨지며 발등을 벤 것이다. 돌아보니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양동이 가득 담겨 있던 물을 쏟은 것처럼. 순식간에 거실에 피가 잔뜩 고였다. 

그때 우리는 피를 많이 흘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많이’가 얼만큼인지는 몰랐다. 천진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피가 날 땐 심장보다 위로 들면 괜찮대. 다리 들어. 더 들어.”

“지혈해야지. 수건으로 쌀까?” 


일사분란했다. 한 친구는 식탁 의자를 가져와 내 다리를 받쳤고, 또 한 친구는 화장실에서 수건을 들고나와 발에 감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꿰매야 하지 않을까?”  

“근데, 안 아파?” 

아프지는 않고 좀 뜨거웠다. 피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 왜 안 아플까.

“너 당분간 춘추복은 못 입겠다. 붕대 감으면 스타킹 못 신지.”

다음 주에 체육대회 있는데!

“다음 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우리 응급처치 되게 잘한다. 그렇지?”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들고 발을 수건으로 싸맸지만 피는 몇 겹의 수건 사이로 계속 흘렀다. 


“엄마 전화 안 받는데 119에 전화해볼까?” 

“그런데 이런 일로 119에 전화해도 되는 거야?”  

“그렇지? 피 난다고 119는 좀 오바지?” 

우리는 순진하게 이런 질문을 하며 웃었다. 동맥이 잘린 지도 모른 체.


엄마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피는 계속 흘렸다. 더 꺼내 올 수건도 없었다. 결국 119에 전화를 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곤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 후 나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수지 접합 전문 병원이었다.  여기 저기 잘린 사람들이 주로 입원해 있었는데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나 손목이 잘린 사람들이었다. 병실엔 열 명 남짓. 모두 남자고, 모두 손을 다친 환자다. 


나는 다리를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고로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병실 아저씨들은 (15살의 눈엔 스무살도 아저씨다) 나를 부러워했다. 


손이 멀쩡하니 밥도 혼자 먹잖아. 

만화책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

폰으로 게임도 할 수 있네, 부럽다. 


나는 아저씨들이 부러웠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특히 화장실. 동맥이 잘렸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운 것은 바로 화장실 때문이었다. 침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는데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건지 변비 때문에 사흘 정도는 큰일 없이 침대 위 간이 변기에 오줌을 쌌다. 

하지만 큰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15살 소녀에게 침대 위에서 똥을 싸라니! 아무리 커튼을 친다 하지만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와 냄새는 어쩌란 말인가. 난 그럴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여기서 똥을 쌀 순 없다고. 화장실에 보내 달라고. 간호사들은 나를 달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그래 니가 이겼다. 진짜 조심해야 해!”  


조금씩 움질일 때마다 발끝이 찌릿찌릿 했지만 화장실에 갈 수 있으니 괜찮았다. 그때부터 나는 팔과 다리 중 내가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혹은 선택해야 한다면 다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점점 커져 말할 수 없는 것과 소리가 안 들리는 것. 소리가 안 들리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예쁜 얼굴에 뚱뚱한 몸, 날씬한 몸에 못생긴 얼굴. 나중엔 이렇게 황당한 것을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두 가지 중에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장단점을 꽤 진지하게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서는 달리 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3주를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일반 병실로 내려갔다. 며칠 후 드디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땅에 발을 디뎠다. 어쩐지 낯설었다. 

“선생님, 어떻게 걷는 거죠?”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뻗으면 되지.” 

“힘을 어떻게 주는데요?”


돌 때부터 걸었다고 치면 14년을 걸어 다녔는데 고작 한 달 안 걸었다고 걷는 방법을 잊어 버리다니. 당황스러웠다.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있었으니 근육이 작아져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근육’ 같은 것은 생각도 못 했다. 다행히 몇 번의 연습 끝에 곧잘 걸었다. 걷는 일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다니. 화장실, 매점,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 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은 15살이 되어 쭉 자랐으면 좋았겠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걷는 것이 당연한 15살로 돌아갔다.   


지금까지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그날처럼 발등에 따뜻한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발을 쳐다볼 때가 있다. 물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커다란 흉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by 김나리 

내 마음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소글매거진

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여성전용 글쓰기 클래스 '소글워크숍' 카카오플러스친구 

http://pf.kakao.com/_xaMK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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