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글워크숍 첫날, 심장을 망치로 치듯 떨렸어요!
오늘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메리카노 벤티사이즈를 원샷한 마냥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거에요. 저도 제가 왜 떠는지 몰라 당황스러웠어요.
손톱 물어뜯는 소리에 다리를 떠는 소리까지 더해졌어요. 양 옆 사람들이 빠르게 타자 치는 소리에 불안해서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이었어요! 강의 자료 앞 페이지를 넘겼다 뒤로 넘겨도 무슨 글을 쓸지 하나도 떠오르지가 않고요. 겨우 한 글자를 타이핑하면 옆 사람들은 마하의 속도로 거침없이 키보드를 쳐내려 가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내 심장을 망치로 치듯 뛰었다니깐요.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요. 저는.
실은 오늘은 시작부터 계산에 어긋난 하루였어요. 한 시간 전까지 합정역에 여유롭게 도착할 요량으로 지하철 시간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죠. 그러나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제가 타려고 했던 그 전철의 문은 닫히고 있었어요. 나태한 제 걸음 속도를 원망했죠.
이십 분을 넘게 기다려 다음 편을 타야 했고, 결국 수업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고 말았어요. 스키니진 지퍼를 억지로 잠근 것처럼 너무 딱 맞았어요.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 위한 몸을 준비하려던 계획이 어긋나 버리고 말았어요.
그래도 지각한 건 아니니 다행이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한 팔에 끼고 온 파우치를 열었죠. 간밤에 완벽 충전한 글쓰기 도구,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어요. 드디어 아이패드가 넷플릭스 시청 말고 다른 일에 쓰이는구나. 화면을 마주볼 수 있게 비스듬히 세우고 블루투스 키보드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어요. 전원에 파란 불이 들어와야 아이패드와 연결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에요. 몇 번이고, 몇 초간 길게 눌렀지만 키보드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더라고요.
원망스러웠어요. 너의 사망 장소는 꼭 이 날 이 곳이어야만 했니? 하루만 더 버텨주지. 나는 오늘 이 곳에서 니가 필요했다고. 아무도 저를 혼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나는 혀를 찼어요. ‘키보드가 작동하는지 먼저 확인했어야 하는 거 아니니? 뭘로 글을 쓰려는 거야? 옆 사람들은 제대로 준비물을 챙겨 왔잖니?’ 에휴.
한시간에 걸친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그 시간이 도래했어요. 액티비티. 아니 벌써? 10분 동안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첫째로 타자를 키보드가 아닌 액정에 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 체육복을 집에 놓고 온 학생시절 어느 날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둘째로 제 손만 허공에 굳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주제도 없고 소재도 없었어요. 세상에. 키보드가 없는 것따윈 문제가 아니란 걸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정신을 집에 두고 온 거에요. 전철에서 떨어트린 걸지도 몰라요. 실은 저 전철에서 선생님이 제 글을 칭찬하는 상상을 했거든요. ‘글 안 써 본 거 맞아요? 너무 잘쓰는데요?’ 정신머리가 나갔어요 흑흑...
업로드 순서대로 각자의 글을 읽는데, 하필 제가 마지막이더라고요. 다들 너무 근사한 글을 쓰셨어요 그 짧은 시간에. ‘마음 속의 나’가 다시 망치를 든 거 같았어요. 순서가 다가올수록 심장 박동에 다시 속력이 붙더라고요. 선생님은 글마다 좋은 점을 집어 주셨어요. 어떤 문장이 좋다. 시니컬한 태도가 재미있다. 저는 글마다 제 글을 옆에 붙여 보았어요. 저에겐 칭찬하실 거리가 없을 거 같아. 어떡하지? 고칠 점을 듣는 유일한 학생이 되겠군. 그러는 동안 제 차례가 와버리고 말았네요. 더듬더듬 입을 열었어요.
그 후의 상황은 선생님도 저도 알고 있지요. 고백하자면 이것이 오늘 제가 겪은 것 중 최고의 예외였어요. 첫째로 여러분이 제 글에 웃어주었어요. 재미있게 들어주신 것 같았어요. 두번째, 선생님이 제 글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 주신 거에요. 세상에! ‘마하의 속도’라는 세상에서 가장 뻔한 표현을 선생님은 ‘박진감’ 이라고 칭찬하셨죠.
그리고 이어지는 조언. ‘팔리는 글에는 주제가 필요하다’ 제 글에 주제가 없다고, 알맹이가 없다고 말씀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실제는 제 상상을 벗어나더라고요. 선생님은 제 글의 주제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같이 고민해 주셨어요. ‘당케님이 생각한 주제가 있나요?’ ‘주위 사람들이 무엇인가 성취하려고 할 때 쉽게 불안해지는 마음에 대해 쓰는 건 어떨까요?’ ‘한 명이라도 공감하는 주제라면 그냥 쓰시면 돼요.’
저에게 인생의 예외는 대부분 폭탄이었는데, 놀라웠어요.
스스로가, 혹은 타인이 세운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조마조마했어요. 그 중 제게 가장 큰 규범은 ‘상상 속의 나’ 에요. 오늘 아침까지도 밑그림을 열심히 그렸죠. 수업 시간보다 한 두 시간 일찍 도착해서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는 나. 준비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챙기는 나. 첫 수업부터 거침없이 근사한 글을 써내려가는 나. ‘상상속의 나’ 를 이루지 못할 때마다 마음 속에 폭탄을 하나씩 심었어요. 언젠가는 타인이 진짜 나를 발견하고 말 거야. 한심한 나.
오늘도 저는 ‘상상속의 나’라는 미션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했어요. 폭탄을 세 개나 심어 버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다정한 코멘트가 폭탄을 하늘로 들어 올렸어요. 예외가 폭죽이 되었죠. 머리 속에서 불꽃 축제가 시작됐어요.
그제야 제가 불안에 휩싸여 무시해 버린 타인의 ‘예외’ 가 떠올랐어요. 정시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학생에게 반갑게 ‘하이!’ 인사하시는 선생님. 핸드폰과 두 손으로 뚝딱뚝딱 멋진 글을 만들어 냈던 학생들. 저를 포함해 제한시간 10분을 무시하고 훌쩍 뛰어넘어 글을 마무리한 학생들.
생각해보면 저는 그 예외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렇네요. 예외는 폭탄이 아닐 수도 있네요. ‘상상속의 나’를 이루지 못했는데 폭탄은 하늘 위로 날아갔고, 심지어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다독임을 받았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저도 묻고 싶어요.
이 글의 결론이 뭐야. 주제는 뭐고? 장르란 게 있기는 하니? 장르를 붙여보자면 ‘개회사’ 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아요.
여의도 불꽃축제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만큼 큰 축제엔 높으신 사람의 자화자찬이 곁들여지지 않겠어요? 이것은 저만의 축제를 시작하는 글인 셈이지요. 오늘부터 나는 일단 글을 써보겠노라. 신나게 써재끼고, 뿌듯한 맘에 인스타에 공유하고, 부끄러움에 휩싸여 제발 아무도 읽지 말아주세요 간절히 바라게 되겠지만, 일단 쓰고 싶은 건 무엇이든 써 보겠노라.
선생님, 한국어는 예외의 언어라고 하셨잖아요.
예외의 파도를 한번 타 보겠습니다.
일단 바닷물을 많이 먹어봐야겠네요.
by 김다영
사랑하는 것들을 잘 사랑하고 싶어요
소글매거진
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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