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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Aug 26. 2019

결혼식 없는 결혼은 불효라고?

자잘한 양해와 타협보다 한번의 큰 충격을 택했다  

내일 결혼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인신고를 한다. 


처음에 부모님은 나한테 배우자가 생긴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했다.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 발언권의 반 이상을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데 사용해 왔으므로, 5년쯤 만나온 상대와 결혼한다는 소식 자체가 그들에게는 어떤 항복 선언 같이 들렸을 것이다. 슬슬 결혼을 하려 하는데 식은 생락할까 싶다는 내 말에 엄마가 침착하게 답했다. “그래, 요즘 그렇게도 많이 한다더라. 그럼 가족끼리 밥 먹는 정도로 대체할까?” 


결혼식을 안 한다고 했지 피로연을 안 한다고 한 건 아니잖아. 라고 되묻는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둘이 가진 돈을 합쳐 그저 함께 살 생각이라는 의사를 좀 더 확실히 밝혔다. 엄마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순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조별 모임에서 숱하게 겪어오지 않았는가. 의견이 다른 사람 둘을 만족시키려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끔찍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을. 


 ‘개혼’이라는 단어를 이때 배웠다. 우리 집안의 개혼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비롯하여 고모, 할머니의 눈물 바람까지. 엄마는 식을 올리지 않겠다는 나를 설득하려고 꽤 애를 썼다. 하지만 굳이 조별 과제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엄마의 제안은 말이 되지 않았다. 가족끼리 밥을 먹는다면 그 ‘가족’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로 정할 셈인가? 스무 살 때까지 한집에 살았던 사람? 그럼 할머니는? 할머니가 초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는? 동창은? 그중 여러 그룹에 걸쳐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누군가는 서운해할 테고 이건 아무것도 안 한 것만 못하게 될 게 뻔했다. 


많이 변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한국의 결혼 문화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비단을 주고받을 수는 없어서 예단이 현금으로 바뀌는 정도, 딱 그 정도만 바뀌었을 뿐이다. 서로 필요한지 아닌지도 모를 이불과 식기 같은 걸 아직도 주고받고 결혼식에서는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며 신부 쪽 집안에선 음식 솜씨를 검사받기 위한 이바지 음식을 보낸다. 


집 사고 살림 장만하느라 빠듯한 당사자들에게 왜 부모 집안의 살림까지 요구할까. 사람을 사람에게 건네는 이상한 풍습이 어째서 지금껏 남아있을까. 왜 평소 먹던 메뉴도 아니고 100년 전 조상들이 먹었을 법한 음식을 이바지 음식이라고 보낼까. 음식 솜씨를 본다는 발상도 어이없지만 애초에 판단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은데. 물론 요즘엔 주고받는 물건을 형편에 맞춰 줄이기도 하고 또 어느 것은 생략하기도 한다지만, 오히려 이 지점이 결혼을 가장 끔찍하게 만든다. 혼인의 당사자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이 모든 예와 식을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면 집안 어르신들의 허락을 일일이 구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나는 자잘한 양해보다 한 번의 큰 충격을 택했다. 


엄마가 울고. 동생은 그 사실을 전해주고. 나는 이미 글렀으니 네가 결혼 두 번 해서 엄마 기쁘게 해드리라고 대꾸하고. 고모가 한숨 쉬고. 이러는 사이 각자 마음을 추스를 만한 시간이 흘렀다. 부모님은 우리 둘의 생각이 일치하는지를 여러 번 확인하고 예비 사돈 어르신들께 더블 체크를 마친 끝에 우리를 지지해 주시기로 했고 외가 쪽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아주셨다. 고모도 방어에 동참했다. 어디서 결혼식을 안 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친가 쪽 어르신들께 요즘 트렌드가 이렇다더라는 이야기를 과장되게 늘어놓았다. 회상하건대 이것은 평생을 해온 불효의 하이라이트였다. 앞으로 이를 얼마나 경신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데도 결혼은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식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내 결혼 준비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정상' 가족을 만들고는 싶지만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은 따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불러온 참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축복받아야 할 결혼이 갈등의 온상이 되어버린 건 안타깝지만, 곱씹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게 뭐 중요할까. 그래도 어찌어찌 위기를 넘겨 사회에서 인정받는 한 가구를 원하는 방식으로 꾸렸다. 이제 우리는 누구도 설득할 필요 없는, 부부라는 말 한마디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가 된다. 내일부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만족이다.




by 꺄륵 

글을 씁니다.


소글매거진

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여성전용 글쓰기 클래스 '소글워크숍' 카카오플러스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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