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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13. 2019

이것은 사랑이야기이다.


다음 글을 읽고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https://brunch.co.kr/@eunseongwrite/233#comment


올해 일월, 나는 글 쓰러 간 씀씀에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방음이 일도 안 되는 이 집 거실에서 가 열명이랑 수업을 하건 말건 수도꼭지 튼 마냥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크리넥스 몇 장으로 감당이 안돼서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가져다 놓고 끊임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코를 팽팽 풀어댔다. 엉엉 소리 내어 운 것은 아니어도 코를 그렇게 훌쩍이는데 같은 방을 쓰는 홍은 곁눈 한 번을 주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지켜주는 거리가 고마웠다. 왜 우냐고 걱정이라도 해줬으면 눈물이 쏙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 나는 채 못 울은 눈물을 아직까지 담고 있었을테지.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우리 집과 다르게 바닥이 뜨끈뜨끈 하기도 해서 겨울 내내 나는 씀씀에 몸도 지질 겸 울 겸 간 김에 글도 좀 쓸 겸 다녔다.


씀씀 내 책상. 여기서 석 달 동안 두루마리 휴지 세 통을 썼다.



















겨울이 혹독했다면 봄은 잔인했다. 봄에 시작한 상담이 횟수를 거듭해가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요동쳤다. 바지에 한쪽 다리를 넣다가 다른 쪽 다리를 넣을 힘이 없어 주저앉아 와,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고 얼굴을 씻다 세면대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아,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에 울던 눈물이 슬픔의 샘에서 퐁퐁퐁 물이 솟아 넘쳐흐르는 이었다면 봄에 우는 울음은 깊은 곳에서 붇받쳐 터져 나왔다. 상담일지를 씀씀에서 쓰면서 버텼다. 자주 나가지는 못했다. 달력을 보면 이즈음에는 한 달에 네 번 나간 달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마치고 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이 공간에 내 작은 책상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이 피어났다.


상담에 큰 진전이 있었고 드라마틱하게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이즈음 이 씀씀에 합류했다. 은 나를 언제 봤다고 첫 만남 때부터 인상이 참 좋네요, 웃는 게 예뻐요 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종교를 전파하려고 하나. 내가 나를 덜 좋아할때는 나한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의심스럽다. 어찌됐던 우리는 묘하게 대화가 잘 통했고 그녀는 내가 서른 넘어 사귄 친구 중에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사귄 친구가 되었다. 씀씀에서는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요일 댄스 클래스를 끝내고 씀씀 문을 열면 Y가 예쁜 수채 색연필화를 책상에서 그리다 맞아줬다. Y가 오늘은 어땠어요, 뭐 배웠어요 물어봐주고 나는 물어봐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배운 춤을 열심히 선보였다. 사실 대게는 묻기도 전에 흥을 주체못하고 다. 그녀도 곧 같은 학원에 등록했다. 우리는 춤을 참 재미있게 배웠고 서로의 춤을 봐주고 같이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를 했다. 보석같이 빛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우리의 얼굴도 반짝였다.


여름이 되자 씀씀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휘했는데 화룡점정은 방구석 구석 시원한 에어컨도 아니고 바람이 솔솔 부는 옥상도 아니고 냉장고에 항상 누가 가져다 놓는 하드나 맥주도 아니고 바로 노.브.라였다. 나는 씀씀에 들어가자마자 브라부터 벗고 시작했다. 땀에 젖은 브라를 옷걸이에 곱게 걸어놓고 해방된 가슴을 마음껏 내밀고 글을 썼다. 가끔 대롱대롱 걸려있는 내 브라가 너무 예의가 없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방동무 홍은 내가 브라를 걸어놓은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집에 갈 때쯤 뽀송뽀송 마른 브라를 채우고 씀씀을 나섰다.


끝없이 써 내려가던 내 이야기가 지겨울 때 즈음, 씀씀에 굴러다니는 글쓰기 질문 300가지 뭐 이런 제목의 책을 뒤적이며 마음대로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목요씀을 같이 한 안이 상찬을 해주며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어,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안의 칭찬으로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쉬운 여자다, 내가.


씀씀 칠판에는 대짝만하게 겸손하지 말자라고 쓰여있고 그 옆에 큰 따옴표를 곁들여 "겸양금지"가 써져있다. 내가 처음 요일씀에서는 뭘하냐고 묻자 소가 응, 모여서 쓰고 같이 읽고 칭찬해줘 라고 간결하게 말했다. 실로 그랬다. 서로의 글을 읽는 씀시간에 칭찬할 말이 없으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자신의 부족한 점은 대강 다들 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이 놓이는 공간과 격려었다. 우물쭈물하게 될 때 등을 조금 밀어주는 체온. 여기서는 뭘하든 칭찬을 받았다. 씀씀을 이렇게 만든 것은 온전히 홍과 소의 공이다. 그녀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4년간 해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주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소의 저 글을 읽고 나는 사랑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씀씀의 공기와 공간과 사람들에 관해.


이것은 사랑이야기이다.


+ 나중에 술을 마시며 내가 그때 참 많이 울었노라고 모른척해줘서 참 고마웠다고 하자 홍이 말했다.

어... 어, 나는 네가 비염이 엄청 심한 줄 알았는데..

옆 방 가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코 푸는 소리 엄청 들었는데 코감기가 진짜 심한가보다 생각했어.


By 이참새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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