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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22. 2019

선조 덕에 꿀빠는 중세도시

안 가 보고 쓰는 여행기: 프랑스 알비

여행을 싫어하는 내가 첫 번째로 다루게 될 여행지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알비다. 어딘지 궁금하면 구글맵에서 검색하자. 툴루즈 근처(라고 하기에는 좀 멀지만, 축약된 지도 상에서는 근처로 느껴지는 곳)에 있다. 이곳을 첫 번째 여행지로 소개하려는 데에는 별 의미 없다. 아는 사람이 그곳으로 이사 또는 이민을 가기 때문이다.


이민을 가는 사람은 은성 언니다. 여성 전용 작업실 씀씀에서 만난 언니는 어떤 악플의 평가를 빌려 오자면 ‘장황한 글’을 쓰는 작가다. ‘어색하지 않게 사랑을 말하는 방법’이라는 희대의 역작을 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왜 ‘장황하다’는 말이 별 생각 없는 사람의 악플인지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녀는 곧 프랑스인 배우자 B와 함께 프랑스로 떠난다. 


방금 생각났는데, 코딱지만한 도시에 한국인-프랑스인 커플은 별로 없을 테고, 내가 알비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로 언니네 커플을 언급하면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내 글은 별로 유명하지 않을 테고, 사람들도 부루마블에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비를 보러 갈 일은 없지 않을까? ‘남프랑스의 숨은 여행지’라고 표현될 정도니까, 뭐. 사람들은 숨은 여행지에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파리에서도 멀고 툴루즈에서도 멀고 니스에서도 먼 알비까지 가서, 그것도 내 글을 읽고서 언니와 B를 찾아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은성 언니는 동북아시아의 다른 나라, 그러니까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사람인 척하면 괜찮을 것이다.


일본인일 수도 있고 중국인일 수도 있은 키무운송 또는 진런씨에 언니가 갈 알비는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도 별 설명이 안 나온다. 처음 소개하는 여행지부터 상상으로 채우게 생겼다. 뭐, 그런 의도로 쓰는 글이니까.

언니 말에 따르면 중세 프랑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로, 고딕 양식의 성당과 집과 마을 구획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언니 말에 따르면(조금 내 식대로 각색하면) ‘선조 덕에 지금도 꿀빠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을 너무 사랑해 천국에 어떻게든 가고 싶어 면죄부를 팔고 샀던 사람들이 산 유럽 마을들이 그렇듯 이곳에서도 성당은 마을 어디에서나 보인다. 누렇고 차가운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과 좁은 골목 사이를 걷다 눈을 들면 생트 세실 대성당이 보이는데,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은 다 똑같아 보이는 나로서는 당최 이 성당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당의 가치를 모르는 나를 무식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으면 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심사위원을 했지 한국에서 본 적도 없는 성당에 대해 글을 쓰고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으로 본 성당은 성당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내 머릿속 유럽 성당은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처럼 긴 초 열몇 대가 녹아내리면서 화려한 무늬를 남기는 것처럼 생겼거나, 독일의 쾰른 대성당처럼 뾰족한 창을 여러 개 꽂아서 죄를 지으면 다 찔러버리겠다는 것처럼 생겼다. 알비의 생트 세실 대성당은, 대성당이긴 한데 큰 것 외에는 다른 특징을 모르겠다. 녹아내릴 것처럼 생기지도, 찌를 것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동그란 기둥과 각진 기둥이 ‘어느 것을 먹을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딩동댕동 척척박사님’ 놀이 할 것처럼 번갈아가며 배치되었고 심지어 색도 불그죽죽하다. 꽃무늬랑 샛노란색 형광에 가까운 하늘색을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가 딱 싫어할 색이다.



글쓴이: 해옥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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