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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14. 2019

Still Moving

소는 레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혹은 도로시와 여행하는 허수아비나 양철인형 같은 무브. 왼손과 오른손에 플라스틱 컵을 끼울 수 있을 듯한 포즈. 양다리가 잘잘한 떨림. 숨이 찰 때까지 떨다가 침대로 쓰러진다. 숨어 잠자던 고양이가 튀어오른다. 움직임은 축복이야. 뭐라고? 움직임을 사랑한다고. 


원하는 만큼의 움직임. 언제나 이것에 목이 말랐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만큼 춤을 추는 것. 정신이 명료해진다. 더는 목이 마르지 않다. 


어릴 땐 얇고 넓적한 동화책으로 몸 주변에 성벽을 둘렀다. 무너질 순간을 위해 기다리는 도미노. 무신경한 가족에 의해 무너져 버린 책더미에 파묻혀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 아주 자주 그건 다 꿈이어서, 엄마는 딸의 어깨를 흔들고 울부짖곤 했다. 

'왜 잠에서 깨어나질 못해, 정말 얘를 어떡해. 어떻게 살려고 이래?' 


엄마, 난 엄마의 일기장이 아니에요. 왜 나에게 말해요?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요. 온종일 울어도 행복한데요. 잠에서 깨지 못하는 건 당신이잖아. 


절반은 꿈을 꾸고 절반은 현실인채로 한 시간이 흐르곤 했다. 멀리서, 엄마의 울음, 들려오고. 꿈속에서 현실로 건너오길 망설이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로 울었다. 여덟살부터 열살까지의 기억이다. 


낮잠을 잤다가 해가 질 무렵에 깰 때면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은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외로웠다. 좀비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끔찍하게 무서웠다. 그 사실이 분하고 겁에 질려서 울었다. 


움직임이 춤이 될까, 못 될까. 더는 궁금하지 않다. 누구도 나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은 태초부터 지니고 태어난 것 같았던 불안은 쫓겨난다. 그렇다면 행복한가?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덧없는가? 덧없지 않고, 두렵지 않다. 자유롭다. 이런 감각의 존재조차 몰랐던 날이 전생같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평생 애닲아했던 무엇을 대충 손에 쥐었는데, 손을 펴 바라보니, 반짝. 이것 네가 원했던 거잖아, 사운드 들려오고. 아, 이것이었구나. 


'그래. 너 맨날 행복하다고 하잖아.' 유튜브 사이에 끼어드는 광고 소음처럼 엄마의 말이 난입한다. 


모국어의 이 세밀한 뉘앙스를 아는 머리를 세게 치고 싶어진다. 너의 행복은 보잘 것 없다거나 나는 너의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세지 하나 없이, 못마땅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외롭고. 

무섭고.


사람이 한국에 살지 않으면 외롭고 무서운 거야. 

사람이 자식이 없으면 외롭고 무서운 거야. 

사람이 돈이 없으면 외롭고 무서운 거야. 


그러길래,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인가.

어차피 언제나 외롭고 무서웠는데. 엄마가 내 자식이어서 난 외롭고 무서웠는데. 돈을 왜 버는지 모르지만 안 벌면 외롭고 무서울까봐 매일 새벽 귀신처럼 욕을 하며 출근하느라 외롭고 무서웠는데.


같은 말을 삼키며 밥을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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