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하고 가라, 한국을 떠나든 달나라 여행을 하든.”
역시 명절.
맥주를 따르며 내년 유럽으로의 이주 계획을 말하려고, 하던 찰나.
나는 내 인생의 계획에 들떠서 세 시간 동안 그 계획들에 대해 수다를 떨 상대를 원했지만, 그게 오늘의 그녀가 아니란 건 몰랐지. 나의 이야기 자루에선는 한 단어도 나오지 못했다.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자꾸 엄마의 말은 터졌다. 알았지. 꼭 하고 가. 택시 문을 닫으며 눈으로 말했다. 안 하면 후회해.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어떤 음악을 틀지, 무얼 먹을지, 파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엄마는 엄마의 결혼식 사진을 볼 때마다 같은 소리를 했다.
입술이 너무 빨갛게 되었어. 화장하는 여자가 돈을 받고 제 값을 못해서.
한번만 더 하면 100번째야.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이미 떠나 있었다. 사진을 매만졌다. 회한인지 애수인지 모를 표정으로 꿈꾸는 듯.
지긋지긋한 망령.
“무슨 엄마가 그렇게 차가워.”
한국인이 아닌 파트너를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고, 딸이 결혼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것을 그냥 두는 엄마에게 친척이 말했다고 했다. 냉정하고 무관심한 엄마네.
타인의 욕망을 자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땅의 바깥을 본 적 없는 엄마는 자신의 의견을 자주 의심한다. 그 불안도 남이 심어준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는 나처럼 은근히 재밌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예쁜 적도 내가 좋은 대학에 가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회가 이식해주는 불안에 충실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5단 찬합으로 교사의 도시락을 싸고, 수능성적이 낮게 나왔을 때 뺨을 때리며 공장에나 가라고 소리쳤지만, 실은 그냥 나와 차를 마시며 영화 이야기나 하는 게 행복한 사람이다. 부나 성취에 관심도 없으면서, 있는 척. 거짓말쟁이.
아마도 ‘나의 결혼식의 엄마의 욕망이냐’고 물으면 “몰라. 별 생각이 없는데.” 라고 할 것이다.
원하지도 않는 것을 왜 해야 해? 라고 물으면 ‘그러게, 나는 평생 싫어하는 것만 하면서 살다 죽고 있네’라며 울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엄마 마음 들여다보라고 하면.
“부모 도리 하려고. 엄마로서 내 딸을 방치해서 내 딸이 나중에 후회하면 내 마음이 찢어지니까, 부모로서 도우려고.”
사랑이 죄가 아니고 가부장제의 너울이 죄인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타고 잠입하는 한국.
평소에도 엄마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카톡을 보낸다.
너는 애가 참 이상하구 별나서 그런지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네 주관대로 해야 잘 되더라. 남들이 하라는 것과 딱 반대로 하면 잘돼. 크크크. 참 별나. 나는 니가 암소리 안 하고 있다가 매번 큰 일 치는 거 보구 알았어. 이런 애를 내가 눌러 키웠네. 안 그랬음 아주 높은 자리에 갔을 건데. 이제는 누구 눈치도 보지말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라. 다른 세상으로 훨훨.
다음날에는
식은 하고 가.
또 다음날에는.
내가 걱정 안 하고 자유롭게 두면 알아서 잘 되는데 자꾸 걱정이 삐져나와....
그녀도 투쟁 중인 것이다. 60년 동안의 자신과.
밤에 긴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사실은 주장이 강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스스로의 생각을 좀 덜 믿고
귀가 얇은 경향이 있어
아마 엄마 부모가 엄마를 지지해 준 경험이 없어서,
그리고 아빠랑 할머니가
엄마의 생각을 무시해 와서
그럴 거라고 생각해
주변 사람들 말 잘 듣는 척 하면서, 속으로 생각해 버릇해.
“아유, 또 개소리~”
엄마의 직관을 믿어
타인의 말은 그게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동의하기 어려우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그리고 나도
'응, 해야지, 할 거야, 그러게 해야 되는데, 하긴 할 건데...'
하면서 환갑까지 버틸 것이다.
싸우기 귀찮아.
그러니까, 레고 춤이나 추면서.
싸울 시간에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