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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 김밥이 먹고 싶은 한밤

서울일기/2019 09 22 22:59

by 소은성

1 크으. 오후 3시부터 쓰려던 일기를 이제야 쓴다.

프리랜서의 일이란....잘하려고만 들면 휴일은 단숨에 날아가 버리는 걸까.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한밤이 되었네.


1:1 수업이랑 원데이랑 추가인원 모집 (3가지) 공지들 써서 여러 플랫폼에 올리고,

향초 만들 오일 3가지 골라서 주문하고(꺄 향초 너모 좋아요)

수업 인스타그램 피씨버전 설치하고,

카카오플러스친구로 오는 수업 문의에 답하고,

브리타 정수기와 생수 중에서 고민하다 답 못 내리고,

물 들어가서 버린 엘지 그램 랩탑에서 구해낸(!!) 데이터 옮길 젠더 주문했다.

: 컴맹이라 컴 제품 쇼핑에 보통 3-4배의 시간이 걸린다.

배송온 젠더로 모니터와 맥북 연결하고(눈 시원. 쵝오다)


중간에 밥 사러 나갔다가 온동네 식당 문 닫은 거 보고 터덜터덜 돌아와

컵 짬뽕밥 먹었다.


흠. 써보니 일도 일이지만,

초 안 켜고! 그냥 생수 먹고 플라스틱 버리는 거에 죄책감 안 느기고!

랩탑에 물을 안 쏟으면 되는 것인데?


......

하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어.


2 배고프다. 망원시장 오지개(무지개? 영원히 안 외워지는 ...) 김밥 종류별로 사다

목 막히게 우걱우걱 먹고 싶다.


요즘 먹는 것마다 배가 아파서 두세시간 웅크리고 있다. 어제는 양꼬치에 만두 먹고 배탈나서 두시까지 못자고 그제는 마라 먹고 배탈, 그제 그제는 돼지고기 먹고 배탈.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정도 이상 먹으면, 바로 배탈이 나는 유리몸이 되어서...(정도 이하로 먹으면 될 것인데 그건 ...어렵다)


3 콩고기 두 종을 주문했다. (아....나, 이러느라 바쁘구나)

음.......eatable 하다. 정확히 그러하다. 먹을 수 있고 누가 '그만 먹어' 하고 그릇 뺏으면 으르렁 거릴 정도이긴 한데....뭐라 말하기 힘들다. 내가 산 건 마라탕 들어가는 '포두부'와 매우 비슷.


4 클라이언트처럼 업무적 관계로 만난 경우에 악의없이 나를 침범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사람은 그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맥락 파악력을 가지는 게 아니야.


1) 그나 그녀에 대해 '나쁜 감정'이 끼어드는 건 지양. 대개의 경우 두려움이나 자기혐오다. 내가 그럴까봐. 내가 눈치 없을까봐 내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건데...(나는 못하는데 너는 막하네 억울하네? or 내가 싫어해서 안 하는 짓을 이렇게 막 하다니....)


2) 소통을 하면 된다.


화내거나/도리어 부탁하는 톤으로 말하지 말고

언제나 같은 온도로, 감정을 섞지 않고

여러번 반복해 말해주거나 혹은 명확하게 말해 줄 것. 일이니까 감정적이 될 필요가 없음


이때 '눈치로 알아듣도록' 애매하게 표현하거나/쿠션용어나 웃음을 집어넣거나 해야 한다는 강박때문에 늘 이것이 필요이상으로 스트레스였다.

‘내가 젤 싫어하는 게 배배 돌려 거절하는 건데

거기에 쓸데없는 감정/시간적 에너지 쓰는 건데

니가 뭔데 나에게 그걸 쓰게 해?’

라는 부분이 꽤 작용한 것.


게다가 실은 사회적 강박 절반, 내 성격 절반.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 남들도 내 말에 예민하게/상처받을까봐 너무너무너무 염려하는 거지-


하지만 점점 ‘명확하게 말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아주 고무적이다.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메세지를 명확하게 말하기 시작하니 아주 편하다.


상대가 명확하게 거절했을 때, 나도 상처 안 받거든. 그걸 알고 나서, 모든 것이 편해졌다


5 남프랑스 식당 자리 찾아보고 있다. 정말? 모든 게 꿈같기만 한데. 그게 현실이 될까?


6 새 강의장소 아주 마음에 든다.


홍대입구역의 혼잡함을 걱정했는데 관광객 많은 쪽 아니고 역에서 도보 2-3분/무인시스템이라 사람 안 만나도 됨/새로 연 데라서 깨끗/이상한 인테리어 없이 매우 모던 심플/쉴 만한 큰 소파 있음/우리 들어가는 큰 방엔 창문이 커서.


스스로의 예민함을 깨닫는 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장소와 사람에 예민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난 무던하지 않아!)


8시간 정도 웹서핑해서 홍대의 모든 강의장소 가격/인테리어/시스템 분석한 뒤 골랐다.

할 때는 이게 왠 개삽질이냐 엉엉 했는데, 1주일 해보고 매우 만족. 나를 칭찬한다.


7 새 작업실도 마음에 몹시 든다.

매우 조용/다른 방 쓰시는 주인분 좋음.

이때도 '여성전용'을 1번으로 두었는데 정말 잘했다.

오늘의 일기는 셀프 칭찬이네. 왠일이니.


8 10월에 부산국제영화제 간다. B는 '몹시 흥분'하여 (영화광) 3일간 영화 12개 볼 기세. 워워.

벌써 요일별 보고 싶은 영화 뽑아서 프린트함. 나는 얘가 없었으면

건조하게 일만 하다가 + 술 처먹고 고꾸라졌다가 1일 버리고 +다시 일하다

마른 오징어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 때가 있었다. 우리집 놀이 담당이 있어서, 아주 재미나게 놀고 있다.

내년에 프랑스 가기 직전에 전주국제영화제도 가겠다고.

그래, 후후후. 실컷 놀아. 니 나라 가면 너도 일하다 쌍코피 좀 흘리겠지.


9 그럴 리 없다. 언젠가 무리하는 B에게 쉬면서 하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는 '일이 너무 많으면' 시위를 하는 민족이거덩?"


오이씨디 노동시간 1위 국가의 딸이 무슨 불국인 걱정이었냐, 참네.


10 집에 간다. <커뮤니티> 봐야지. 나는 geek들이 너무 좋다. 아이티크라우드랑 빅뱅이론이랑 커뮤니티는 보지만 범죄물 스릴러물은 추천받은 것만 한 자루인데...하나도 안 봤다.


부산에서 볼 영화 체크는 내일 할래. 졸령.


11 집에 오니 B가 침대 위에 삼각대처럼 서서 베개로 모기 때려잡고 있다. 표정이 왕을 지키는 기사처럼 결연해서 새나 쥐가 들어온 줄 알았네. (가끔 미코가 물고 옴=_=) 너무 귀여워서 피로가 단박에 다 풀림.


나는 왜 이렇게 얘가 귀여울까. 가끔 몸서리쳐지게 귀여워서....좀 지나친 것 같다. 음 지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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