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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의 음식 : 뺑오쇼콜라와 꼬르따도

서울일기: 20190923 12:20

by 소은성

1 다시마와 말린 표고로 육수를 낸 미소 수프, 콩고기를 매운양념에 재워 갖은 야채, 버섯과 볶은 것(쌈 싸먹을 것), 텃밭에서 기른 대왕 애호박 잘게 썰어서 호박부침개 부쳤다. 찹쌀 넣어 쌀밥도 쿡쿡.


같이 사는데 나는 저녁이 훌쩍 지나서야 집에 오니까, 맨날 B 혼자 밥 해 먹는다. 남의 나라 사는데 그러면 어쩐지 쓸쓸할 거 같아서, 가끔 한식을 해 놓는다. 내일은 같이 넓은 면으로 쌀국수 볶음 해 먹고 모레는 좋아하는 돌솥비빔밥 해 줘야지. 바빠지면 금세 10-20일이 지나있고 그러니까.


난 좀 이상해서, 시간 나면 웹서핑으로 무려 7시간을 보낼 정도로 시간을 후루루루루루 버리는데. 그렇게 사는 인간인데도...


음식을 할 때마다 시간낭비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순이야.

장 보고 야채 썰고 육수 우리고 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이건 취미인데도?


아마도 하루 세 끼 뜨거운 새 밥 새 국 새 찌개를 원하던 원가족(...)과 그걸 수행하던 엄마의 기억 때문일 것 같아.



버리자! 밥이 죄가 아니지.

밥바밥바바밥바바밥아침밥 타령이 별로인 것이지.


가끔 B가 한국 아버지 고스트 연기를 하며

내 귀에 대고


배고파아아아

아 침 밥 아 침 밥

부렉퍼스트트트트트트트투으으으


할 때가 있다. 내가 정말 말이 안 되는 유치한 유머에 깔딱 넘어가는 편이란 걸 알고 하는 짓인데,


기대대로 나는 방을 구르며 웃고, 상흔...같은 것이 아무는 기분이 든다. 웃음으로 서서히 치료되는 거다. 즐거운 웃음이든 조롱섞인 비웃음이든.



2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뭘 먹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매일 달라지는데 오늘의 답은


모카포트로 뽑은 에스프레소 한 잔과 각설탕+버터와 꿀 바른 구운 바게트+쇼숑 오 뽐(애플파이 비슷한 것)+뺑 오 쇼콜라


매일 아침 뺑오쇼콜라 큰 것+꼬르따도 (스페인식 우유+에쏘) 먹던 바르셀로나 떠오르네. 미어캣처럼 주변 손님들 뭐 먹는지 뭐 읽는지 아침에 어떤 표정인지 관찰하며, 행복했었다.


에쏘 노노 꼬르따도로 바꾸자!


햇살이 비추는 테이블에서 빵가루 마구 흩날리며 먹어야 한다. 입가에 꿀을 묻히면서. 손가락 쪽쪽 빨아가며. 내키면 하루에 8끼 먹는 제라르 드빠르디유처럼 거나하게 웃으면서 말이야-


당을 한껏 끌어올려 황홀해진 상태에서 죽어야지.


3 Hangry. 자전거 타러 나가기 전의 가족이 나라 잃은 백성같은 표정이어서 걱정했는데 초간장에 호박부침개 찍어먹더니, 농담하고 웃고 난리났네. 휴.


아침밥으로 내가 바게트에 꿀 발라 먹을 때

자기는 배 나왔다고 호두에 대추야자 끼워먹고 물 마시느라 슬펐던것 뿐!!!!!!!!!


얼굴이 몹시 애처롭게 생겨서 자주 헷갈려.

배고픈 표정이 너무 멜랑콜리한.....


그리고

나도 매일 저런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인답게 배고프면

무뚝뚝하고 앵그리해진다.

멜랑콜리해지지는 않음.

밥내놔 밥!!!!!!! 으르렁임



인생의 고민들, 다 의미없다. 잘 먹으면 50프로는 해결. 적어도 우리집은 이 법칙이 심하게 적용된다.


4 생협에 장보러 가면서 필요한 거 없냐 물었더니

Nothing...(개쓸쓸)


뭐야, 먹돌이가 그럴리가 없는디.....

하며 신발 신는데

다급하게


콩국!!!! 콩국!!!! 있으면!!!!

메추리알!!!! 메추리알!!!!!!!!!!!!!!


하여간 멜랑콜리한 척 좀 말고

첨부터 의욕적이면 안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