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기: 2018년의 어느날
저녁으로 돌냄비우동을 먹다가 머리를 쿵쿵 때리며 말했다.
“사라져라. 생각 생각.”
B가 말했다.
“나도? 할 수 있어요?”
내 머리 쿵쿵을 자기가 자기 머리에 해도 되냐는 농담. 자기가 그런다면 내 마음도 자기처럼 아플 거라는 마음.
대상포진 대상포진...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대상포진일 가능성이 30프로이고 아니면 알러지일 수 있으니 약을 먹은 뒤 경과를 보자는 진단. 불길한 상상이 마음을 잠식했다. 최근 여러 질환이 번갈아 나를 녹다운 시킨 후로 노파심 할머니가 되었다. 국수 가락이 잔뜩 남겨졌다.
“미코 보세요.”
왜? 오독오독 저녁을 먹는 미코. 나보고 고양이를 보살펴야 하니 아프지도 말란 소리인가.
“미코는 90프로 die라고 의사가 말했어요.
너는? 30프로죠.
그런데 미코 어떻게 되었지요?
She survived.
지금은 뭐하고 있어요? 밥 아주 많이 먹고 아주 뚱뚱해졌어요.”
길고양이였던 아기 미코는 범백에 걸린 상태로 우리집에 제발로 들어왔다. 아마 살려고 그랬겠지. 살 확률이 10프로라기에 안락사까지 고민했는데, 약 한 봉지 먹이자마자 밥을 막 씹어먹기 시작했다!
두 끼, 세 끼 계속 열심히 먹어나갔고 결국 밥 힘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미코 봐, 어차피 앞으로 심하게 아플 거면 일단 밥은 먹어.
아픈 다음에 우울해져도 늦지 않아.
“Don’t jump on it.”
녹차와 초콜릿을 챙겨주며 바티가 속삭였다.
오지 않은 미래에 미리 점프하지 말자. 걱정에 휩싸이지 말자.
아직 아프지 않은데 뭘.
----------------------------------------------------------------------------------------------
3년 동안 별별 병이 다 왔었는데(천식 고혈압 공황장애 식도염 신우신염......)
심지어 대상포진까지 왔었다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의 건강함에 너무나 감사하며......
일기의 힘이라니.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힘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너무 아파서 엄마밥 먹고 내 침대에서 쉬겠다며 엄마 집에 쉬러가기까지 했네.
지금은 엄마집보다 우리집이 훨씬 편해서, 가지도 않는구만. 야......시간이란 무섭고 대단하구나!
'포진이 오려다가 너무 잘 먹고 잘 쉬어서 도망갔다'고 의사가 진단했었다. ㅋㅋㅋㅋㅋㅋ